우리나라 조선소가 세계 1위부터 7위까지 휩쓸 무렵인 2006년에 5위인 STX조선이 시설 확장에 나섰다. 세계적 조선소로 도약하려면 100만 평 이상의 용지가 필요했다. 그러나 경남 진해조선소 주변에서 5년 동안 확보한 용지는 5000여 평에 불과했다. 지주들의 비협조와 이중 삼중의 규제 때문에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결국 유리한 조건을 내놓은 다롄()에 조선소를 짓기로 결정했다. 6위인 한진중공업도 그해 필리핀 수비크 만을 새 조선소 용지로 확정했다.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최소한 1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해외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10년간 세계 1위 자리를 지키던 한국 조선업이 처음 중국에 밀렸다. 중국은 수주 물량에서 배를 건조 인도한 물량을 뺀 수주 잔량 점유율이 34.7%로 한국을 1%포인트가량 앞섰다. 올해 수주량도 중국이 142척으로 전 세계 발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차이나 머니를 앞세워 저가 수주를 휩쓸고,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자국이 발주한 선박을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아직 LNG선 해양플랜트 같은 고부가가치 분야에서는 우리가 앞서지만 안심할 때가 아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얼마 안 가 이런 분야도 역전될 수 있다.
중국 조선업이 1위로 올라선 데는 중국 지도자들이 열과 성으로 뒷받침한 효과가 컸다. 중국 지도부는 한국에 올 때마다 대기업 공장을 빼놓지 않고 방문했다. 1998년 후진타오 당시 국가 부주석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을 찾았다. 2003년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LG전자 평택공장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둘러봤다. 2007년 원자바오 총리는 이례적으로 SK텔레콤을 방문해 세계의 공장 중국이 한국 제조업에는 이제 관심이 없다는 시각을 드러냈다는 해석을 낳았다.
중국 정치인들이 전자 자동차 조선 등 제조업 키우기에 발 벗고 나선 반면 한국은 대기업 때리기에 열중했다. 1년이면 짓는 공장을 허가받느라 35년 허비한다는 기업의 고충을 덜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출자총액규제 수도권규제 등으로 기업 활동을 옥죄는 족쇄만 늘렸다. 그런 점에서 참으로 비()실용적인 나라다. 기업이 조선에 이어 자동차 전자 분야까지 중국에 밀리는 날을 상상해보면 아찔해진다.
박 영 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