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예비 명단이 나온 뒤 친일 문제는 공과()를 균형 있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친일 명단 공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라며 대통령을 공격했다. 지난달 8일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최종 명단을 발표했으며 이와는 별개로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규명위)도 1005명의 친일 명단을 내놨다. 하지만 청와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친일 문제를 바라보는 청와대의 시각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
뉴라이트 쪽 논객인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오늘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 토론회에서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라고 한다. 박 교수는 미리 배포한 원고에서 친일 명단 문제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를 암묵적 동의로 봐야 할지, 사안 자체에 대한 회피로 받아들여야 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비겁한 자세라고 비판하면서 정부는 뜨거운 화톳불에서 밤톨을 꺼내는 일을 재야 우파 보수에만 맡기겠다는 건가라고 질문했다. 친일 명단이 편향적 정파적으로 작성된 것을 바로잡는 일을 왜 우파 보수에만 맡겨 놓느냐는 항변이다.
친일규명위는 지난달 말 활동을 종료했지만 친일 명단의 부당성 편파성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친일 명단에 포함될 인사 한 사람씩을 놓고 최종 결정하는 자리에서 위원 11명이 다수결로 판정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노무현 정권이 만든 좌파 우세의 위원회가 친일 여부를 다수결로 가렸다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좌파 진영이 선호하는 좌익 인사로 친일 명단에서 빠진 여운형의 친일 관련 새 자료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 위원회가 작성한 친일 명단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흠집을 가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 법통을 잇고 있는 현 정부도 소 닭 보듯 할 일이 아니다. 더구나 친일규명위는 대통령 소속 기관이다. 잘못된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정부가 사명감을 갖고 옥석을 가려야 한다. 나라의 정체성과 기강이 걸린 중대한 일이다. 예민한 문제라는 이유로 현 정부의 중도실용이 그릇된 일에 눈을 감는 것이라면 실망스럽다.
홍 찬 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