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11월 서울 개최를 앞두고 검찰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2003년 이후 국제테러조직과 연루된 정황이 있어 구금되거나 추방된 외국인이 70여명에 달한데다 최근 들어 탈레반 등 국제테러단체와 연결된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 잇따르는 등 테러 관련 징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위조여권 사용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으로 구속된 파키스탄인 안와르 울 하크 씨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 탈레반의 세력이 강해 탈레바니스탄으로 불리는 파키스탄 스와트 지역 출신인 하크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주한미군 기지를 정찰하라는 지령을 받고 한국에 들어왔다고 진술했다. 수사 과정에서 하크 씨가 대구에서 이맘(이슬람교 종교지도자)으로 활동하며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라믹 무브먼트 오브 우즈베키스탄 단원으로 의심받는 이들과 접촉한 정황도 발견됐다. 하지만 하크 씨는 이후 국가정보원이 자꾸 내 뒤를 캐고 다녀서 홧김에 거짓말을 했다며 말을 바꿨고 검찰은 결국 간첩 혐의를 제외한 채 지난주 하크 씨를 기소했다.
마약의 원료인 헤로인 정제에 사용되는 무수초산을 밀수출하다 국내에서 적발된 6건의 사건은 모두 수출 대상 지역이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테러단체의 활동이 활발한 국가들이다. 또 이들 사건에 연루된 외국인 및 한국 귀화자 7명 가운데 5명은 탈레반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파키스탄(4명)과 아프가니스탄 출신이다. 검찰 관계자는 국제테러조직과 연계됐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나온 적은 없지만 해당 국가 수사기관 등에서는 적발된 이들이 탈레반 소속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검찰청 공안부 관계자들은 지난해 말부터 잇달아 미국 일본 유럽 지역을 방문해 해당국가 수사, 정보기관과 테러 대응을 위한 협조채널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또 이달 안에 공안부 검사들로 태스크포스(TF) 성격의 테러범죄 연구회를 꾸려 대 테러 정책을 연구하고 수사매뉴얼을 만들 방침이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19일부터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검사협회(IPA) 집행위원회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사공조 기구인 아시아컨벤션 설립을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시아컨벤션이 설립되면 유로저스트(유럽사법기구)처럼 회원국 내에서 동일한 효력을 갖는 공동체포영장 제도를 도입해 국제테러범죄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FATF)는 지난해 6월 작성된 한국의 제도 이행 실태 보고서에서 한국에서 테러자금 조달이 확인된 사례나 테러 시도는 없었지만, 2003년 이후 국제테러조직과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70여 명이 구금되거나 추방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은 테러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인식 때문에 한국을 통해 자금이나 상품을 이동시켜 합법적으로 위장하려는 사례가 늘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관계 법령의 미비로 수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테러 수사 실무자들은 테러 의심범죄에서는 정보기관의 첩보가 중요한 자료지만, 법원에서 증거능력이 없어 수사와 기소에 어려움이 크다고 지적한다. 또 하크 씨 사건처럼 불법체류자 단속 등으로 추방됐던 외국인이 여권위조가 쉬운 제3세계 국가 여권으로 재입국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문, 홍채 자료 등 생체정보 수집이 가능하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