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지하자금 양성화 외면

Posted April. 30, 2010 05:21,   

ENGLISH

비효율에 익숙해진 사회

지난해 말 기준 PIGS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그리스가 13.6%로 가장 높고 스페인(11.2%), 포르투갈(9.4%), 이탈리아(5.3%)의 순이다.

과도한 재정적자 때문에 국가 부도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PIGS 국가의 재정적자 문제가 불거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92년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재정적자 비율은 이미 10%대를 넘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보다 나은 수준이었지만 이후 계속 증가세를 보여 1993년에는 7%대였다.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에는 오히려 적자 폭이 줄었지만 이후 다시 급속도로 늘어 지금에 이르렀다.

공공부문 개혁에 실패한 것이 부실의 근본 원인이다. 2009년 10월 집권한 그리스 사회당 정부는 공기업 근로자에게 임금을 올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정부 지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공기업 인건비 때문에 재정적자가 눈 덩이처럼 불었다. 지난달 23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방문한 그리스 아테네시 엘무 거리의 시위장면은 이 같은 비효율의 전형을 보여줬다. 국영 항공사였던 올림픽항공에서 해고된 직원 300여 명은 연금에 손을 대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스페인 포르투갈 등도 강성 노조 때문에 공기업 개혁이 지지부진하다.

지하경제 규모 너무 커 재정적자가 심해졌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지하자금을 양지로 끌어내는 조치는 지지부진했다. 그리스 감사원은 2007년에 거둬들이지 못한 세금이 310억 유로(45조88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스는 특히 관광과 해운업의 비중이 너무 높아 글로벌 경기가 불황에 접어들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가 적지 않았지만 제조업 비중을 높이는 산업 구조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금융위기가 PIGS의 비극 촉발

PIGS 국가들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1999년 EU 단일통화인 유로화가 도입되기 전 자체적으로 환율정책을 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산업 구조조정과 함께 자국 경제력에 맞는 통화가치를 유지했다면 경상수지를 개선하면서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투기세력에 외환시장의 주도권을 내주면서 경상수지 적자규모는 그대로였다..

유로화 도입 후 EU 지역 내 단일 통화정책이 시행되면서 수출을 통해 재정적자 문제를 풀 수 있는 여지는 크게 줄었다.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데도 독일 프랑스 등 강대국 수준으로 통화가치를 상향 조정(환율은 하향 조정)하다 보니 경상수지 적자폭이 더 커졌다. 실제 스페인의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비율은 유로화 도입 전인 199498년에는 평균 0.7% 수준이었지만 19992007년에는 5.5%로 급증했다. 잘 사는 나라나 못 사는 나라 모두 획일적인 환율을 적용한 결과다.

자국 내 경제체질 개선에 실패하고 준비 없이 단일 통화체제에 가입한 상황에서 2008년 불어 닥친 금융위기는 대다수 PIGS 국가들에게는 악몽이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금융회사를 지탱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구제금융을 넣는 것밖에 없었다. 스페인은 저축은행 부실을 막기 위해 재정부담이 커졌고 정부 보증비율이 GDP의 15%선을 넘어섰다.

한국은 지난해 재정적자 비율이 4.1%로 PIGS 국가에 비해 재정이 매우 양호한 편이다. 2009년 23개 공기업의 총부채가 2008년보다 36조1000억 원(20.4%)이나 늘어난 증가속도가 문제다. 가계와 기업 등 민간 부문의 부채가 위험수위에 이른 상황이어서 비정부 부문 부채가 정부 부문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와 민간 부문의 부채를 종합적으로 관리해 위기의 징후에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기자



홍수용 박형준 legman@donga.com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