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11시 반 서울중앙지법 525호 형사 법정. 호리호리한 몸매에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 터번만 쓰면 영락없는 중동 지역 지도자처럼 보이는 한 외국인이 녹색 수의를 입은 채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살림 모하메드? 파키스탄 거주지가 어디죠? 재판장인 형사1단독 정선재 부장판사가 먼저 이름과 주소를 확인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긴장한 탓인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키스탄인 통역인은 파키스탄 스와트 지역에서 지게차 운전사로 일했다는 모하메드 씨(39)의 답변을 한국말로 통역했다.
파키스탄 북서부의 스와트 지역은 풍광이 아름다워 파키스탄의 스위스로 불리는 곳. 하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접경지역인 이곳은 2008년부터 무장 테러조직인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다. 아내와 4명의 자녀를 둔 모하메드 씨는 지난해 2월 곡물운반선을 타고 전북 군산항에 밀입국했다. 경남 창녕군으로 넘어 온 그는 한 시멘트 벽돌 공장 등에서 불법 취업해 일을 하다 지난 달 초 제보를 받은 경찰에 붙잡혔다.
한국에서 그의 행적은 의심쩍었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했지만 송금 내용이 변변치 않았다. 주말마다 1시간가량 떨어진 대구의 이슬람센터를 찾아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이곳은 탈레반 활동 의혹을 사고 있는 한 이슬람 성직자가 거주한 곳이었다. 경찰의 추궁 끝에 그는 파키스탄에서 18일간 탈레반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검찰은 이날 법정에서 모하메드 씨를 상대로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탈레반으로 지목돼 지명수배 받고 있지 않느냐고 캐물었다. 하지만 그는 밀입국 사실만 인정하고, 탈레반 활동은 강력하게 부인했다. 검사가 다시 스와트 지역 탈레반 소탕 작전을 피해 한국으로 밀입국한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탈레반이 가족 중 1명씩 반드시 탈레반에 가입하지 않으면 살해하겠다고 협박해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내 이름만 올려놓은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내가 탈레반이라면 귀국 즉시 처벌받을 텐데 왜 귀국하려 하겠느냐. 빨리 판결을 선고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최후진술을 할 때에는 2세부터 9세까지 4명의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밀입국한 것이 죄라며 달게 받겠다면서 연방 눈물을 훔쳤다.
방청객들 사이에서는 탈레반은커녕 참 불쌍하다 엉성한 악어의 눈물 연기라는 등 평가가 엇갈렸다. 검찰은 모하메드 씨에게 위험성이 있다며 징역 2년 6개월을 구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