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이후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북한군 기세에 밀려 유엔군과 한국군은 부산 방어선을 최후의 보루로 삼고 항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1950년 8월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유엔군의 38선 이북 진격 시나리오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내놓는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결정적 승기를 잡기 전이었지만 CIA는 한국군과 유엔군의 대공세를 예상이나 한 듯 북한 지역의 점령작전에 나설 경우의 득실을 면밀하게 비교한 것. CIA는 16일 미주리 주 인디펜던스 트루먼 도서관에서 열린 625전쟁 6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개전 이후 CIA가 전황에 대한 분석과 향후 전망을 담은 정보 메모 형식의 비밀문서 등 1300여 점의 문서를 공개했다.
유엔군의 한반도 전역에 대한 군사 점령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제목으로 8월 22일 작성된 석 장짜리 비밀문서는 유엔군이 전세를 역전시켜 38선 이북으로 진격할 경우 소련에 결정적인 외교적 패배를 안겨줄 것이며 유엔과 미국의 국위를 현격하게 높여줄 승리라는 점에서 고려해 볼 만하다고 평가했다. 또 한반도를 장악함으로써 공산 진영의 세력 확장을 억제할 수 있는 쐐기를 박을 수 있으며 양 진영의 충돌로 인한 충격을 흡수할 완충지대로 한반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CIA는 유엔군의 북진에 대해 불가 결론을 내린다. 첫 번째 이유는 미국이 유엔에서 북진 결정에 대한 승인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꼽았다. 유엔군 파견의 이유는 침략군 북한을 남한에서 몰아내는 것이지 북한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두 번째로는 중공군과의 교전 가능성을 들었다. 미국과 중공의 군사적 충돌을 내심 바라는 소련은 이 같은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될 경우 쌍수를 들고 환영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왔다. 궁극적으로 미국은 소련과의 전면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숨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는 38선 이북에 대한 군사공격이 지속적인 한반도 안보 불안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도 내다봤다. 자신의 영향권을 미국에 내준 것을 불쾌하게 생각할 소련이 지속적인 군사도발을 할 가능성이 높고 1949년 철군을 단행한 미군이 장기적으로 한반도에 주둔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CIA는 이날 북한의 남침과 중공군 개입 가능성을 낮게 평가함으로써 결정적 오판을 했다는 자기반성 보고서도 공개했다. CIA는 9월 8일 보고서에서 중국의 전쟁 개입을 추정할 직접적인 근거는 없다고 단언했다. 또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북한군의 전황이 불리해졌을 때도 중공군이 대응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점점 중공군 개입을 배제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10월 12일 중공군의 개입이 1950년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고 군사적 견지에서 볼 때 중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할 절호의 시기는 지나갔다고 보고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 같은 정보판단 속에서 10월 15일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호놀룰루 웨이크 섬에서 만났을 때 전쟁은 크리스마스에는 끝날 것이라고 호언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을 비웃듯 중공군 3만여 명은 10월 19일 처음으로 두만강을 건넜고 며칠 뒤에는 15만 명이 추가로 국경을 넘으면서 인해전술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