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방북 중인 한상렬 목사가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북한 군인의 도움을 받아 망원경으로 남쪽을 살펴보는 사진이 어제 한 신문에 실렸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배포한 사진이다. 사진 속 한 목사의 표정은 희한한 남쪽 나라를 구경하는 듯 하다. 북이 노리는 바일 것이다. 한 목사는 북이 꾸민 선전 연극에 배우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한 목사는 6월 12일 정부 승인 없이 중국을 통해 방북했다. 그는 6월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남한을 향해 북한 체제를 부정하거나 무시하거나 모독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명박식 거짓말의 결정판이라고 주장했다. 6월 23일에는 북측이 평양에서 마련한 환영 군중집회에 참석해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에 전쟁을 몰아오고 있다고 강변했다. 김정일에 대해서는 국방위원장님, 이명박 정부는 역적패당으로 지칭했다. 사용하는 용어나 표현을 보면 김정일 집단 내부 사람의 말과 똑 같다.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런 모습이 놀랍지도 않다. 그는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연방제 옹호 등 북한의 대남노선을 충실히 대변해왔다. 김일성의 남침으로 수많은 민족을 살상했던 625전쟁을 애국적 통일전쟁이라 했고, 군을 앞세워 독재 세습체제를 강화하려는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한반도) 평화정치로 옹호했다. 북이 내려 보낸 간첩과 빨치산을 통일애국열사라고 미화하기도 했다. 그가 간부로 몸담아온 전국연합, 통일연대, 진보연대는 항상 반미() 투쟁의 선봉대 구실을 했다. 이들에게 반미는 곧 종북() 숭북()의 다른 표현이다.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원래 공존할 수 없다. 공산주의 자체가 일종의 종교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북에도 교회와 절이 있지만 실제로는 신도가 없는 위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 목사가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로서 김일성교() 전파에 열심인 듯한 모습을 보이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차라리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돕는데 나선다면 목사로서도, 통일운동으로서도 인정받을 만하다. 한 목사는 망원경으로 남쪽을 볼 게 아니라 맨눈으로 북한 사회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어떻겠는가. 그리고 거기가 낙원이라면 눌러 살기를 권한다.이 진 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