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42년간 미국에 이은 제2경제대국 지위를 지켜온 일본은 2분기 국내총생산(GDP)에서 처음으로 중국에 2위 자리를 내줬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이런 추락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동아일보가 입수한 일본산업성이 작성한 일본 산업의 현상과 과제란 보고서에는 이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었다. 그들의 근심은 경제적 극일()을 외치며 달려온 한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일본 경제 추락의 3대 구조적 이유
이 보고서는 일본 경제의 어려움은 심각하다. 그것은 일과성의 문제가 아니라 3개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며 산업구조, 기업 비즈니스 모델, 비즈니스 인프라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일단 산업구조 측면에서는 경제적 파이를 확대하는 데 글로벌 제조업, 특히 자동차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20002007년의 8년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겨우 2.5% 성장했으며 그중 거의 절반(1.1%포인트)이 자동차산업이 기여한 것이다. 또 이 보고서는 수출형 제조업 중심의 성장은 신흥국과의 비용 경쟁에 직면했고 취업자 수에서도 글로벌 제조업의 비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며 글로벌 제조업에 고용(창출)에 대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보고서는 일본 산업은 한국과 비교할 때 자국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동종업계 기업이 너무 많아 국내에서 지나친 소모전을 벌인다. 반면 한국 기업은 국내 시장을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신속한 투자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승용차 철강 휴대전화 전력 등 주요 산업의 전체 내수시장은 일본이 한국보다 모두 크지만 1개 회사당 시장규모는 한국이 50300% 더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일본 정부는 보고서에서 (일본 경제의 추락은) 특정 기업이나 특정 제품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기업 비즈니스 모델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1970년대에는 수직통합을 기반으로 한 경쟁력으로 세계를 사실상 석권했지만 1990년대 경제 거품(버블)이 꺼지면서 부채 설비 고용 세 부문에서 모두 과잉 현상이 빚어졌고 이는 산업공동화의 위기와 세계시장 점유율 상실로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세트(완제품) 기업들은 성장 신흥국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부품업체들은 신흥국 기업과의 끝없는 생산비용 경쟁으로 피폐해져 임금조차도 정체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 보고서는 비즈니스 인프라의 문제에 대해 일본은 모든 면에서 아시아의 중핵 거점으로서의 경쟁력을 급격하게 상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산업성이 지난해 유럽 미국 아시아 기업들을 대상으로 대일 투자 관심도를 조사한 결과 아시아지역 거점 제조 거점 연구개발(R&D) 거점 물류 거점 등 7개 조사항목에서 모두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줬다. 2년 전인 2007년에만 해도 아시아지역 및 R&D 거점 항목에서는 일본이 1위였다.
일본의 대책과 한국에 주는 시사점
보고서가 진단한 일본 경제의 문제점들은 우리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예를 들면 일본 기업의 대외투자는 증가하는데 국내 투자는 정체됐고 수도권과 지방 경제의 격차가 더욱 확대됐으며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가 급속히 감소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경제도 일본의 문제점을 연구하지 않고 추격만 하다가는 같은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 산업성이 제안한 돌파구는 마치 한국 경제에 주는 조언처럼 다가온다. 보고서는 자동차 전자 기계류 등 수출형 제조업과 내수업종을 확연히 구분해온 산업전략을 버리고 모든 산업을 신흥국의 성장 시장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력 철도 에너지 도시개발 등 내수형 인프라 사업뿐만 아니라 패션 식료품 관광 애니메이션 같은 감성문화사업도 수출업종으로 키우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담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경제 전문가인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은 일본의 탈공업화 개혁 실패 경험을 교훈 삼아 기존의 패러다임에 집착하지 말고 끊임없이 산업을 혁신해야 한다며 특히 신흥국과의 교역 및 해외공장 운영을 통해 신흥국의 성장파급 효과와 부가가치를 흡수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경제성장률 0.4%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은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추가 경기부양책 검토를 지시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7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간 총리는 16일 경제 각료들에게 엔고의 영향 등 경기상황에 대한 분석과 함께 추가적인 경기대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새로운 경기 대책으로는 12월 말 종료되는 에코포인트제(친환경 가전제품 보조금)의 연장을 통한 소비 자극책과 고교 및 대학 졸업자에 대한 취업 지원, 엔화가치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책 등이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