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코레일) 허준영 사장과 김기태 노조위원장이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임금을 동결하고 노조전임자 수를 64명에서 14명으로 줄이는 내용의 임금협약서에 어제 서명했다. 2005년 공사 출범 이후 노조가 파업이나 태업 없이 협상을 끝낸 것은 처음이다. 김 노조위원장은 정부의 반()노조 분위기와 현실 여건을 감안해 노조가 숙제를 떠안았다고 말했다. 노조가 강경 투쟁을 계속 할 경우 투쟁보다 조합원은 물론 여론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회사 안팎의 관측이다.
올해 초부터 15일까지 발생한 파업은 7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 감소했다. 파업에 따른 근로손실일수는 54만 여일에서 44만 여일로 19% 줄었다. 아직도 주요 선진국 평균치의 5배 수준이지만 감소세가 뚜렷하다. 이달 들어서는 5년 이상 된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해고자 농성사태와 동희오토의 사내하청업체 해고자 문제가 일단락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폭발했던 강성노동 운동이 합리적으로 연착륙을 하려는 징후가 보이는 것 같다.
최근 노조는 집단행동 대신에 노동위원회 제소를 택하고 있다. 올해 들어 9월말까지 노동위에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은 1만499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 늘었다. 투쟁 대신 상생을 선택하는 노조도 늘었다. 노사의 화합 선언은 올해 들어 이달 초까지 2804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9% 증가했다. 투쟁지향적인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에서 나온 상생선언이 이 기간 중 19건에서 48건으로 2.5배로 늘었다.
노사 분규가 줄어든 현상에 대해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국민 여론이 노조의 불법 폭력투쟁은 물론이고 강경노선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또 경기 침체 이후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중시하게 됐고,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던 이전 정부와는 달리 현 정부가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어 노조가 무리한 투쟁을 삼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노조가 국민 눈높이에 맞춰 누울 자리를 봐가며 다리를 뻗는다는 얘기다.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가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때 총파업 계획을 축소하고 발전노조가 파업을 취소한 것도 이런 분위기 탓이 크다.
홍 권 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