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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자비와 가혹한 정의

Posted December. 20, 2012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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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1. 헝클어진 머리에 펑퍼짐한 몸매를 가진 중년 여성이 오디션 무대에 올랐을 때 사람들 반응은 시큰둥했다. 하지만 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객석에 전율이 흘렀다. 그다지 내세울 것 없던 40대 노처녀 수전 보일이 지구촌 신데렐라로 탄생한 순간이다. 그때 천상의 목소리로 들려준 노래(I Dreamed a Dream)가 나오는 뮤지컬의 제목은 무엇일까? 퀴즈 2. 지난주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2487번째로 등재된 영화배우 휴 잭맨. 세계 최초로 어제 국내서 개봉한 영화에서 그는 36시간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노래와 연기를 하는 투혼을 보였다. 그가 열연한 희망의 아이콘은 누구일까?

답은 레미제라블과 장발장이다. 비참한 사람들이란 뜻을 지닌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이 올 연말 국내외에서 화제다. 원작을 기반으로 제작된 뮤지컬이 최근 할리우드 영화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작품에선 가난 때문에 빵 한 조각을 훔친 생계형 범죄로 19년간 지옥 같은 감옥 생활을 했던 장발장과 그 뒤를 집요하게 쫓는 자베르 경감이 팽팽하게 대치한다. 장발장이 사랑의 힘으로 절망에서 정신적 구원을 받았다면, 무자비한 정의에 집착한 자베르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치유의 메시지가 담긴 에세이집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올해 32주간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저자인 혜민 스님은 그제 TV에 나와 한 지붕 네 가족으로 화장실을 차지하느라 고생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삶의 시련이 남을 이해하는 자양분이 되더라. 장발장이 자신을 학대했던 사회는 물론이고 평생 자기를 괴롭혔던 자베르에게도 분노와 증오가 아니라 자비와 사랑을 베푼 것은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대통령 선거는 끝났으나 보다 중요한 선택의 책임은 당선인과 더불어 우리 모두 균등하게 져야 한다. 인간적 가치를 존중하는 화합의 길로 갈 것인가, 내 잣대에 따른 맹목적 정의를 추종할 것인가. 정략적 편 가르기와 상대적 박탈감으로 찢긴 공동체를 봉합하는 과정에서 우선해야 할 가치를 선택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노예 해방을 놓고 분열된 사회를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으로 이끌었던 링컨의 말을 한번 새겨볼 만하다. 나는 항상 가혹한 정의보다는 자비가 더 큰 결실을 맺는다고 믿는다.고 미 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