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에서 이것을 파는 사람들은 미국 OSS(전략정보국중앙정보국의 전신)의 스파이로 간주됐다. 프랑스인들은 샹젤리제 대로를 따라 질주하는 붉은색 트럭에는 프랑스의 문화와 정신을 파괴할 이것이 들어 있다고 믿었다. 트럭을 뒤엎거나 실려 있던 이것을 꺼내 깨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산당 기관지는 미국이 이것을 앞세워 프랑스를 식민지화하려 한다고 발끈했고, 파리에서는 이것을 만드는 회사가 노트르담 성당을 구입해 한쪽 외벽을 광고판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것은 코카콜라였다.
여섯 가지 음료로 세계사를 바라본 책 역사 한잔 하실까요?의 저자인 영국 작가 톰 스탠디지는 병 하나에 든 코카콜라는 자본주의에 가장 가깝게 가도록 하는 물건이라고 평가했다. 코카콜라가 들어오는 순간이 바로 그 지역에서 뭔가 진짜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이라고도 했다. 그만큼 코카콜라는 자본주의의 상징이고, 미국의 상징이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 때 옛 동독 주민들이 서독에서 바리바리 사간 것이 코카콜라였고, 2003년 태국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시위대들이 깨뜨린 것이 코카콜라였다.
지난해 여름 인터넷 동영상 전문 사이트 유튜브에서는 평양의 한 식당에 등장한 코카콜라 영상이 화제였다. 북한과 이탈리아의 조인트벤처인 코리탈이 세운 이 음식점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찍은 것이었다. 이들이 피자를 먹는 식탁에 코카콜라 캔이 놓여 있었다. 세계에서 코카콜라가 정식 수입되지 않는 단 두 나라가 쿠바와 북한이니 누군가가 비공식적인 경로로 몰래 들여왔을 게 분명하다. 그 코카콜라가 다시 평양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최고권력자 앞에 버젓이. 지난달 28일 평양 유경정주영체육관에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함께 농구를 보던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데니스 로드먼 앞 탁자에 놓인 빨간 코카콜라캔이 시선을 끌었다. 탁자 위의 코카콜라캔은 노동신문 1면의 메인사진에서도 살아남았다.
부시맨(1980년)이라는 영화가 있다.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족 마을에 어느 날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코카콜라병이 하나 하늘에서 떨어진다. 마을 위를 날던 비행기에서 승객이 내던진 빈병이었지만 이를 신의 선물로 여긴 마을 사람들은 서로 독차지하려고 싸운다. 코카콜라병 하나가 작은 마을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이다. 결국 한 주민이 마을의 평화를 위해 이 병을 도로 신에게 돌려주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이 영화의 원제는 신이 미쳤음에 틀림없어(The Gods Must Be Crazy). 불경스럽지만 신이 미쳤어도 좋으니 저 작은 붉은 캔이 북한에 불고 있을지도 모를 변화의 징표이기를 바랄 뿐이다.
민 동 용 정치부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