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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48m 속 삶과 죽음의 거리

Posted July. 13, 201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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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자유와 억압, 희망과 좌절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그들은 말한다. 48m라고. 영화 48m는 그 거리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48m는 북한과 중국을 가르며 흐르는 압록강에서 가장 폭이 좁은 곳, 북한 양강도와 중국 창바이() 현 사이를 말한다. 이곳엔 철조망도 없고 지뢰도 없다. 하지만 더 위험한 게 있다. 북한 국경경비대의 매서운 눈초리와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이다.

영화 48m는 실화를 토대로 탈북을 다룬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은 살기 위해 탈북을 꿈꾸고, 강을 건너는 모험에 나선다. 하지만 많은 이가 총을 맞고 쓰러진다. 단속 성과에 눈이 먼 국경경비대 간부의 꾐에 애꿎게 희생되는 사람들도 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한 국경경비대원이 결국 탈북의 행렬에 동참하는 얘기도 나온다. 강을 건너는 데 성공한 사람들도 나중에 다시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된다고 이 영화는 마지막에 전한다.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광주시민들이 꽃 파는 처녀를 막아야 한다고 한 장진성 씨의 글 때문이다. 광주국제영화제조직위가 2013광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기 위해 통일부에 승인 신청을 한 북한 영화 꽃 파는 처녀는 단순한 항일영화가 아니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계급투쟁을 고취하는 공산혁명 선전영화라고 장 씨는 말한다. 이런 영화를 민주의 땅 광주에서 상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차라리 북한 인권영화 48m를 상영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장 씨는 그 자신이 탈북자다. 내 딸을 100원에 팝니다라는 시로 유명하다.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일했기에 누구보다 북한을 잘 안다. 2004년 북한을 탈출해 서울에 발을 딛기까지의 역경을 그린 그의 탈북 수기는 그 자체가 드라마다. 그는 지금 북한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실상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탈북자인터넷신문 뉴포커스를 운영하고 있다. 장 씨는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48m의 갈망에 빠져들게 한다고 말했다.

영화 48m는 탈북자들이 돈을 내고 성원을 보태 만든 것이다. 실화에 충실하려고 했기에 시종 내용이 무겁고 화면은 어둡다. 다른 북한 관련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코믹한 내용이나 연애담 같은 재밋거리도 없다. 대사가 북한말투라 알아듣기 어렵고, 그래서 이해를 놓치는 부분도 더러 있다. 제작 여건이 어려웠던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왕 만들 바에야 좀더 영화적인 요소를 가미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한다.

이 영화는 작년 8월에 완성됐다. 한 달 뒤 북한인권운동가인 수잰 숄티의 지원으로 미국 하원에서 특별시사회도 열었다. 그러나 국내 상영은 1년 가까이 미뤄졌다. 배급사를 찾기 어려워서다. 흥행을 중시하는 배급사들의 성에 찰 리 없다. 그나마 경제민주화 분위기 덕에 CJ CGV가 받아줘 올 7월 4일부터 전국에서 상영 중이다.

역시나 관람객은 많지 않다. 이전엔 어두운 사회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를 일부러 찾아가 관람하고, 이를 알려 힘을 보태는 유명 인사나 정치인들도 더러 있었는데 이 영화엔 그런 사람들조차 없다. CGV에 물어보니 11일까지 누적 관람객 수는 7175명이다. 10일 밤 내가 이 영화를 볼 때도 관람객은 나를 포함해 고작 11명이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상영해준 CGV도, 함께 영화를 봐준 관람객들도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북한 인권 어쩌고 하면 흔히 이념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념이 아니라, 그냥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얘기다. 비록 재미는 덜하더라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좀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광주국제영화제가 문화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상호 이해와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북한 영화 2편의 상영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이 영화도 포함시키면 안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