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6시 반 올가을 첫 야간 개방을 30분 앞둔 서울 종로구 창경궁 곳곳에 귀한 손님을 맞는 청사초롱이 일제히 켜졌다. 정문인 홍화문에서 명정문을 지나 명정전 앞까지 품계석을 따라 일렬로 은은한 등이 불을 밝혔다. 일반 관람객들은 오후 6시부터 홍화문 밖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섰다.
도윤아, 저기가 임금님이 계시던 곳이야.
가족과 함께 창경궁을 찾은 채기수 씨(42)가 아들 도윤 군(7)에게 명정전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채 씨는 직장이 종로에 있지만 창경궁에 와볼 기회가 없었다며 밤에 보는 경치가 좋고 아이에게 교육도 될 것 같아 가족과 함께 왔다고 말했다. 창경궁 동쪽 연못 춘당지로 가는 길에는 손을 꼭 잡고 걷는 연인들과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부부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6400m에 이르는 춘당지 주변을 촘촘히 밝힌 불빛은 춘당지 북쪽 식물원까지 이어졌다.
문화재청은 이달 1일부터 창경궁과 경복궁을 오후 710시에 개방하고 있다. 창경궁은 이달 113일(7일 제외), 경복궁은 1628일(22일 제외) 개방한다.
창경궁과 경복궁은 2010년 가을부터 매년 봄, 가을마다 5일씩 인원 제한 없이 야간 개방을 해왔다. 그러나 올해 5월 야간 개방에선 관람객이 한꺼번에 몰려 부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난 데다 일부 관람객이 궁궐 내에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먹는 모습이 적발돼 비판이 일었다. 이 때문에 문화재청은 올해부터 질서 유지와 문화재 관리를 위해 일일 관람객 수를 창경궁 1700명, 경복궁 1500명 이내로 제한하는 대신에 관람 기간을 각각 12일로 늘렸다. 관람 질서와 안전 관리를 위해 기업과 시민단체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관람지도 요원을 선발해 배치했다.
이날 창경궁을 찾은 관람객들은 궁내에서는 비교적 질서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 관람객은 창경궁 밖 도로변 주차금지 표지판 앞에도 버젓이 차를 세워놓고 입장해 다른 관람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입장객 제한으로 관람 분위기가 차분해지면서 1일 이후 아직까지 부상 사고나 음주취식은 접수되지 않았다. 딸과 함께 창경궁을 찾은 주부 유모 씨(47)는 지난해 경복궁 야간 개방 때는 사람 구경만 하고 나왔을 정도로 어수선했다며 이번처럼 개방일을 조금 늘리더라도 일일 관람 인원은 엄격하게 제한하면 방문객 모두가 쾌적한 분위기에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입장권은 인터넷(옥션티켓)으로 예매할 수 있다. 지난달 26일 시작한 창경궁 입장권은 현재 인터넷으로는 모두 매진됐지만 현장에서 매일 600장을 판매하고 있다. 경복궁은 이달 11일 오후 2시부터 인터넷을 통해 표를 판매한다. 경복궁 역시 현장에서도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다.
야간에 고궁을 찾는 관람객들을 위한 특별 공연도 준비돼 있다. 창경궁은 13일까지 통명전 앞에서 혜경궁 홍씨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내용의 전통 공연 창경궁 통명전, 혜경궁을 품다라는 특별 공연을 연다. 경복궁은 1628일 효와 공경을 음악으로 표현하다를 주제로 조선시대 궁중무용과 음악을 수정전 앞에서 선보인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