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공기업인 한전KPS에는 회사가 휴업하거나 문을 닫아도 전 직원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인사 규정이 있다. 노조와 맺은 단체협상 9조에 명시된 회사가 휴업하거나 폐업해도 고용과 근속연수를 승계한다는 조항이 바로 그것이다. 한전KPS 측은 경영권 침해 조항이어서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노조의 반대 때문에 15년 이상 단협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노조의 경영권 침해와 낙하산으로 선임된 경영진의 무책임한 경영이 손쓸 수 없는 수위에 이르렀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부채와 복리후생 수준만 줄이는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 방안은 암 환자에게 진통제를 처방하는 임시방편이며 경영체계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공공기관 개혁을 위해 전국 295개 공공기관으로부터 단체협상의 경영권 침해 조항을 신고 받은 결과 40개 공공기관이 단체협상에 경영권 침해 관련 내용이 있다고 신고했다.
정부에 신고하지 않았지만 단협에 절대 임금을 삭감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넣은 9개 연구기관까지 포함하면 49개 공공기관(17%) 노조가 경영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 6곳 중 1곳꼴로 노조가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단협의 경영권 침해 조항을 살펴보면 어떤 이유로도 임금을 깎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고 직원이 창업을 위해 휴직하려 할 때 이를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사측 고유권한인 직장 폐쇄를 할 경우에도 노조와 협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단협에 반영한 공공기관도 있었다. 일부 공공기관은 파업이 벌어져도 직원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단협에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각 공공기관의 경영권 침해 사항을 시정하는 정상화 계획을 3월 말까지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단협 개정협상이 통상 2년에 한 번 진행되는 만큼 올해 협상을 하지 않는 기관이 많은 데다 노조가 단협 개정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아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이런 가운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한국전력 등 이달 말까지 자구계획을 제출해야 하는 38개 중점관리 공공 노조위원장들은 23일 대표자 회의를 열고 단협 개정과 정부 경영평가 거부를 선언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 측은 성과급이 결정되는 경영평가에 단협 개정이 포함되는 만큼 노조도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한 번 정해진 기득권을 없애려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을 위해서는 지난해 철도파업 이상으로 법과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재명 jmpark@donga.com홍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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