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통일은 서독이 동독을 일방적으로 흡수한 통일이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동독주민이 시간이 걸리는 단계적 통일 대신 신속히 서독 체제로 편입되기를 선택한 결과라고 보는 게 옳다. 1990년 3월 18일 동독에서 최초로 실시된 자유총선거에서 서독의 기본법 23조에 따라 동독 5개주를 서독에 편입시키는 조기통일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공약한 기독교민주연합 중심의 독일연맹이 192석을 얻어 압승했다. 반면 신속한 통일에 반대하며 통일헌법 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제안한 사민당은 8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동독 인민회의는 8월23일 그해 10월 3일을 기해 동독을 서독에 편입시키기로 결의했다.
1989년 11월 9일 갑작스런 베를린 장벽 붕괴로 서독의 번영과 자유를 더욱 잘 알게 된 동독주민은 하루 빨리 서독처럼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헬무토 콜 서독 총리가 1989년 11월 조약공동체에서 국가연합단계를 거쳐 연방식 통일국가로 나아가는 10단계 통일방안을 제시했으나 대세를 바꿀 수 없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어제 흡수통일에 반대한다.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혼란과 비용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북() 포용정책을 통한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 사례를 들었지만 동독주민이 서독을 동경해 자발적으로 그 체제에 편입되기를 원했던 것을 알고 발언했는지 의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대북정책이 통일이 현실화할 때 과연 우리 국민과 북한 주민의 지지를 받을 것인지도 냉철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김정은은 김일성 왕조 국가를 오래 지탱하고 싶겠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통독 전 동독은 동구권에서 가장 잘 살았지만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런 일이 한반도에서도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이 붕괴하는 상황에 잘 대비해놓은 것이 중요하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남북통일을 비롯한 북한 이슈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1일 공식적으로 밝힌 것도 북한 상황이 그만큼 심상치 않음을 보여준다. 우리도 통일 논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
독일은 준비 안 된 상태에서 통일을 맞다 보니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통일 후 20년간 최대 2조 유로로 추산되는 막대한 비용을 치렀다. 하지만 오늘날 유럽의 최강국으로 거듭난 것이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원한다고 빨리 오지 않고, 피한다고 미룰 수 없는 게 통일이다.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 치밀히 통일 준비를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