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라노 인근 시골 동네에서 열린 댄스 파티.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 스텝을 밟으며 춤추는 남녀 한 쌍이 모든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남자는 몇 년 전까지 인근 성당의 신부였다. 우연한 계기로 마을 축제에서 왈츠를 추게 된 신부는 다음 날 성당에 면직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 후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는 댄스 스타가 됐다.
일본 여성인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30여 년간 살면서 겪은 일상생활과 현지 사람들과의 인연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세상 어디나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애정이 담겨 있다. 댄스 스타가 된 신부에 대해서도 사람을 돕고 구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여긴다.
특유의 호기심으로 선술집에서 만난 경찰에게 밀라노 암흑가에 대한 정보를 듣고 그곳을 혼자 취재하기도 한다. 친구의 잃어버린 개를 찾으며 벌어진 소동, 오랜 꿈이었던 배를 마련했지만 끝내 마지막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남성 등 때론 유쾌하고 때론 묵직한 에피소드가 색색의 모자이크를 이룬다.
이탈리아에서의 삶을 환상적으로만 써 내려가지 않은 것이 매력이다.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의 이탈리아를 만나는 기분이다. 제59회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과 제27회 고단샤 에세이상을 사상 최초로 동시 수상했다. 저자의 두 번째 이탈리아 에세이인 밀라노의 태양 시칠리아의 달은 전작에 소개했던 인물들의 근황이 여럿 소개돼 반가움을 더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