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는 꿈으로 쓰고, 퇴임사는 발자취로 쓴다. 그래서 퇴임사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떠난 사람이 이룬 것과 남긴 것에 대한 평가는 이미 나 있다. 조준희 전 IBK기업은행장은 2013년 말 퇴임 때 재직 중 사고나 질병으로 숨진 행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명복을 빌었다. 2010년 말 취임사를 할 때도 그랬다. 최초의 내부 공채 출신 은행장으로서 사람을 아끼는 면모를 시종일관 잃지 않았다.
그는 인사에 일가견이 있었다. 말단 행원 시절 인사부에 근무하면서 원샷 인사를 구상했다. 지금도 정부 부처나 민간기업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인사를 몇 차례 나눠서 한다. 인사 때면 길게는 한 달 가깝게 직원들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 미리 준비를 완벽하게 해놓으면 이런 폐단을 없앨 수 있다. 이런 꿈을 은행장이 되기 30년 전에 가졌다. 그리고 실행했다. 남들이 고칠 수 없다고 했던 관행을 혁파했다.
조 전 행장은 6년 가깝게 단 하루도 108배를 거르지 않는다. 독감으로 몸이 아파도 108배는 꼭 했다. 대박을 친 송해 광고도 108배를 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가 송해 선생님을 광고 모델로 쓰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자 거의 모든 임직원들이 반대했다. 고민을 하다 광고회사에 입사한 딸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딸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108배를 하면서 며칠 동안 간절하게 답을 구한 끝에 결심했다. 기업은행에 예금하면 기업을 살립니다라는 광고 문안까지 직접 만들어 대성공을 거뒀다.
그는 취임사에서 기업은행의 태종 이방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조선 왕조의 기틀을 세종이 다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버지 태종이 있었다. 기업은행을 100년, 200년 이어지는 위대한 은행으로 만들 사람이 나와 뜻을 펼 수 있도록 인사 청탁 등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것이었다. 그가 최근 펴낸 송해를 품다라는 책의 화두는 간절함이다. 간절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는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최 영 훈 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