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대선의 공화당 주자 중 한 명이자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69)가 수차례 막말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기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달 출마 선언 후 내놓은 히스패닉 비하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금세 잊혀질 것 같았지만, 오히려 지지율 상승세를 타더니 급기야 공화당 간판 주자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를 제치고 선두로 부상했다.
21일 공개된 워싱턴포스트(WP)와 ABC방송의 공동 여론조사(1619일1002명 대상)에 따르면 트럼프는 공화당 지지자들로부터 24%의 지지율을 얻어 2위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13%), 3위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12%)를 크게 앞섰다.
트럼프 인기 고공행진의 가장 큰 이유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진보 정책에 염증을 느낀 공화당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WP가 지난해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 중 오바마 정부의 일하는 방식에 화가 난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37%였다. 이는 최근 20년 사이 현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는 가장 큰 수치다.
트럼프는 이민법 개혁,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 케어) 등 오바마 정부의 주요 이슈가 백인 주류 계층에 불리한 정책이라는 점을 파고들고 있다.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이슈를 트럼프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으로 건드렸고, 백인 상당수가 익명이 보장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의 또 다른 특징은 히스패닉 막말 논란에서 보듯 강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카리스마형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별명이 햄릿일 정도로 정책을 결정할 때 장고()를 거듭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트럼프는 각종 인터뷰와 유세에서 거침없는 언변을 보여주고 있고, 내용보다는 그런 스타일에 열광하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내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일부 언론은 그의 행태를 빗대 골든(돈 많은) 카우보이로 부를 정도다.
그런 트럼프도 최근 고비를 맞고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5년간 포로로 붙잡혔던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을 전쟁 영웅이 아니다라고 비하했다가 뭇매를 맞고 있다. 공화당 주자인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는 20일 트럼프는 암()적 존재라고 비판했고, 또 다른 주자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아예 대놓고 트럼프는 멍청이(jackass)라고 맹비난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21일 바보(idiot) 같은 그레이엄이 몇 년 전 나에게 전화를 걸어 방송에서 나에 대해 잘 좀 말해 달라고 한 적이 있다며 그레이엄 의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유세장에서 공개해 또 다른 화제를 낳기도 했다.
트럼프가 지지율 상승세를 계속 유지할지는 매케인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많은 미국인들에게 전쟁 영웅으로 존경받는 매케인 의원에게 인신공격성 비판을 가한 것은 지나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은 자신의 막말에 대해 좀처럼 사과하지 않는 트럼프가 매케인 의원에게만큼은 사과해 지지율 하락을 저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