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럭비는 일본의 가예()일까. 얼마 전 럭비 월드컵에서 일본이 강호 남아프리카에 역사적인 승리를 거둬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그 며칠 전 일본 국회에서도 역사적인 럭비가 연출됐다.
참의원 특별위원회에서 여야 의원이 위원장석에 쇄도해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여당이 안보법안 채결을 강행한 것이다. 위원장이 뭘 말하고 있는지도, 표결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전혀 몰랐지만 심판 부재의 대혼란 속에 트라이가 성립된 것으로 간주됐다. 또 다음 날 본회의 채결을 거쳐 일본은 한정적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나라가 됐다.
중국의 군사적 팽창 등 국제 환경 변화가 큰 이유지만 정부 스스로 오랜 기간 헌법 위반으로 간주해온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헌법상 가능이라고 180도 태도를 바꾼 것이어서 놀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헌법학자, 게다가 전 최고재판소 장관까지 위헌이다고 단언했고 여론조사에서도 반대와 신중론이 압도적인 법안이었다.
이런 목소리를 배경으로 고조된 반대 시위가 연일 국회를 둘러쌌지만 여당은 아랑곳없이 억지로 밀어붙였다. 이래도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자유와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내걸고 외교를 추진하는 아베 신조() 총리지만, 그런 자격이 있나 하는 의문이 커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입법에 매우 이의가 있지만 그렇다고 일본은 언제든지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든가, 하물며 군국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틀린 방향이다. 미국의 전쟁에 후방지원 형태로 가담하기 쉬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실상은 이른바 한미동맹 수준에 근접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게다가 우경화가 지적되는 일본 사회에서 이 법의 성립과는 거꾸로 여론에 반전 분위기가 여전히 뿌리 깊다는 사실이 부각됐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학생들, 아이를 안은 어머니들. 이런 사람들이 쏟아지는 비를 무릅쓰고 각자 생각을 담은 피켓을 들고 국회에 밀려드는 광경은 과거에 볼 수 없던 것이었다.
앞으로 정작 위험한 전쟁터로의 자위대 파견이 현실이 될 때 선거를 앞둔 의원들이 정말 이를 승인할 수 있을까. 만약 자위대가 타국 땅에서 전투를 하다 사상자를 내게 됐을 때 그 현실을 일본 사회가 수용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게 사법에 의해 헌법 위반이라고 판단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베 정권은 그런 것까지 충분히 시야에 넣고 입법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무모한 전쟁을 벌인 끝에 70년 전 비참한 패배를 경험한 일본 사회는 전쟁에 대한 알레르기가 여전히 강하다. 그것은 한국전쟁을 체험하고 지금도 때로 전투의 긴장을 느끼고 있는 한국과는 다르다. 이는 징병에 대한 거부 반응의 강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이 장차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는 북한의 동향은 물론이고 중국과의 긴장이 커질지 어떨지에 따라 달라진다. 일중은 서로 자중해야 하지만 긴장 완화의 열쇠를 쥘 수 있는 것은 한국이 아닐까. 요즘 한국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중국에 치우친 자세를 보여 왔지만 문제는 그것이 일중 긴장 완화에 도움이 안 됐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주도로 가을에 한중일 정상회담이 실현되는 것은 늦게나마 좋은 일이다. 이왕이면 그 전에 뉴욕에서 유엔총회 때 한일 정상회담을 했으면 했지만 조촐하게나마 인사를 나눈 것만으로도 전진이라고 보자.
하지만 박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일본 안보법제에 불안을 보이면서 대규모 군비 확장을 추진하는 중국에 대해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균형이 맞지 않다.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그토록 대대적인 군사 퍼레이드를 목격하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일까.
한국은 오로지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움직임만 걱정되는 것 같은데 제일 걱정해야 할 것은 일중이 군사 충돌하는 사례일 것이다. 일중이 싸우면 한국이 큰일을 겪는 것은 역사가 여러 차례 입증해 왔다. 일중 사이에서 양국의 군비 경쟁을 경계하고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사명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