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오카() 현 미이케() 탄광에서 일하다 숨진 한반도 출신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기리는 위령비가 일본 우익 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낙서 테러를 당했다.
이 위령비는 일본 지방자치단체와 강제징용에 책임이 있는 일본 기업이 협조해 1995년 후쿠오카 현 오무타()에 세운 것으로 한일 화해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한국 정부는 일제강점기 미이케 탄광과 미이케 항에 조선인 9200여 명이 동원돼 32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이케 탄광은 또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메이지() 시대 산업혁명 유산 23곳 중 한 곳으로 한국 측은 등재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강제징용 사실을 표기할 것을 요구해 왔다.
25일 후쿠오카총영사관 등에 따르면 23일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관계자가 오무타 시내 공원에 있는 징용 희생자 위령비 비문이 검은 페인트로 훼손된 사실을 발견한 뒤 곧바로 일본 경찰에 신고했다. 강제징용자들이 숙소의 벽장에 남긴 한 맺힌 등의 글귀와 이에 대한 설명을 새긴 비석에 검은 페인트가 분사돼 있었고 아래에 일본어로 거짓말이라는 큰 글씨가 적혀 있었다.
또 다른 위령비에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고 일본의 산()을 더러운 비석으로 오염시키지 말라는 글귀도 적혀 있었다. 심지어 (한국은) 라이따이한(한-베트남 혼혈 자녀) 문제에 대해 베트남에 사죄하라는 내용의 글귀도 남겨져 있었다.
이 위령비 설립을 주도한 현지 시민단체 재일코리아 오무타의 우판근 대표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15일 위령비를 찾았을 때는 괜찮았다며 이후에 (낙서 테러가)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위령비 훼손은)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할 말이 있으면 얼굴을 마주하고 정정당당하게 토론하자고 제안했다.
우 대표는 오무타 시가 위령비 부지를 무상 제공하고 미이케 탄광을 운영했던 미쓰이 계열 3개사가 건립비용을 부담한 점을 지적하며 행정당국과 기업이 시민단체와 협력해 위령비를 세운 곳은 전국적으로도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이른바 혐한 분위기를 타고 최근 유사한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3월에는 도쿄() 한국문화원에 39세 남성이 라이터용 기름을 뿌린 뒤 불을 붙였고 지난해 4월에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 한일 학생들이 우애를 다짐하며 심은 나무가 뿌리째 뽑혔다.
이런 가운데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을 처음으로 보도했던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강의를 하던 대학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고 교도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그가 비상근 강사로 재직 중인 삿포로()의 호쿠세이가쿠엔대가 최근 그의 신변 안전을 위한 경비 비용이 급증했다면서 계약 중단도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는 것이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