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January. 22, 2016 08:11,
Updated January. 22, 2016 08:30
일제는 대한제국을 병합한 뒤 1919년 이곳에 고종이 쌓았던 제단(장충단)을 없애고 공원을 만들었다. 1932년에는 장충단 공원 동쪽에 초대 통감을 지내는 등 한일병합에 공이 큰 이토를 기리는 일본 조동종(曹洞宗) 계열의 사찰인 박문사를 세웠다.
사찰의 위치는 서울 중구 동호로 지금의 신라호텔 자리와 거의 일치한다. 현재 신라호텔 정문, 본당이 신라호텔 영빈관에 해당한다. 신라호텔 영빈관 옆에 있는 신라면세점 등 한옥호텔 건립 추진지역도 박문사 터 위에 들어선다.
박문사는 낙성식에 당시 조선 총독이던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 등 유력자 1000여 명이 참여할 정도로 조선총독부가 관리하는 주요 사찰이었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건물은 모두 해체됐지만 올라가는 계단, 1930년대 차량 통행길 등은 신라호텔 안에 남아 있다.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이미 건물도 사라진 이토 히로부미 추모 사찰 때문에 호텔을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