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November. 12, 2016 07:12,
Updated November. 12, 2016 07:17
“국민은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69)을 더 많이 찍었는데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70)가 됐다. 이게 말이 되느냐.”
패자인 클린턴은 승자 트럼프에게 깨끗이 승복했지만 주별 승자가 배정된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세계 유일의 미국 대선 제도에 대한 논란은 가열되고 있다. 11일 0시 기준(개표율 99%)으로 트럼프는 승리 요건인 선거인단 538명의 절반(270명)을 훌쩍 넘는 290명을 확보해 클린턴(228명)에게 크게 앞섰다. 그러나 총득표는 클린턴(약 6027만 명·47.7%)이 트럼프(약 5994만 명·47.4%)보다 33만 명 더 많다.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지만 주별 승자독식에 따른 선거인단 확보에서는 뒤져 패배했던 일이 16년 만에 재연된 것이다.
총득표에서 앞선 후보가 선거인단 승자독식 원칙 때문에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경우는 2000년과 올해를 포함해 모두 5차례 있었다. 나머지 세 번(1824년, 1876년, 1888년)은 19세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NBC방송은 “최근 5차례 대선에서 무려 2회나 이런 일이 생긴 만큼 대선제도 개혁 문제가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10일 보도했다.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는 이달 초 전문가 분석을 토대로 선거인단 제도의 한계에 대해 “주별로 1표만 더 얻어도 배정된 선거인단을 독식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면 전체 투표의 23%만 얻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명의 후보 중 1명이 선거인단 배정 숫자가 가장 적은 주부터 시작해 주별로 1표씩만 더 많이 얻는다고 가정하면 40번째 주에서 대통령 당선자가 될 수 있고 총득표 수가 전체의 23%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클린턴 지지자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서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는 취지의 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클린턴이 총투표에선 앞섰다. 그녀가 우리의 진정한 대통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진보 인사인 마이클 무어 영화감독도 트위터 등을 통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클린턴이 총투표에선 이겼다’는 명백한 사실을 각인시켜라”고 촉구하고 있다.
각 주의 선거인단에 다음 달 19일 선거인단의 대통령 선출 투표에서 승자독식의 기존 방식에 얽매이지 말고 전국적으로 더 많은 득표를 한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뽑아 달라고 촉구하는 인터넷 청원운동도 시작됐다. 선거인단은 당연히 주별 선거 결과에 맞춰 투표권을 행사해야 하지만 이를 어겨도 벌금만 내면 되는 주가 적지 않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미국의 독특한 선거인단 제도는 ‘각 주가 하나의 나라와 다름없다’는 정신에 기초해 건국 초기부터 시행돼 온 제도다. 선거인단 538명은 미국 하원(435명)과 미국 상원(100명) 숫자에, 워싱턴DC 선거인단 3명을 더한 숫자다. 이 선거인단 제도를 폐지하거나 수정하려면 그 숫자와 선출 방식을 규정한 헌법(2조 제1절)을 바꿔야 한다.
미국의 개헌 절차는 상하원에서 각각 재적 3분의 2 이상 지지를 얻고 전국 50개 주 중 38개 주 이상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진보 성향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헌법 개정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2000년 상황이 2016년에도 재연된 만큼 선거인단 제도 개혁에 대한 의회 내 논의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