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January. 04, 2018 08:51,
Updated January. 04, 2018 09:39
국립춘천박물관을 둘러싸고 때 아닌 ‘예맥(濊貊) 논란’이 불거졌다. 최근 상설전시관 리모델링을 마치고 하반기에 개최할 예정이던 예족 관련 특별전까지 갑작스레 무산됐다. 예맥은 고대 한반도 중·북부와 만주 일대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종족을 가리킨다.
김상태 국립춘천박물관장은 3일 “당초 기획특별전으로 추진한 ‘중도문화와 강원의 예족’을 지역 정서를 감안해 연기하기로 했다”며 “다만 관련 학술대회는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지난해 외부에서 객원연구원을 초빙해 춘천 중도문화 자료를 수집하는 등 의욕적으로 이번 기획을 준비해 왔으나 암초를 만났다.
이번 논란은 춘천문화원과 춘천역사문화연구회 등이 춘천박물관의 철기시대 전시패널과 도록에 예족만 언급된 사실을 문제 삼으며 불거졌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박물관은 춘천 등 영서지역 전체를 예족의 지배 지역으로 단정해 맥족과 절대적인 상관성을 지닌 지역 역사를 부정했다”고 반발했다. 춘천을 포함한 영서지역은 맥족이, 영동지역은 예족이 각각 차지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춘천시의회는 지난해 12월 박물관을 규탄하는 성명서까지 채택했다.
이에 따라 박물관은 일부 사서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맥족 기록을 전시관 패널에 덧붙이기로 했다. 다만 지역단체가 요구한 도록 폐기는 수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학계는 예맥은 아직 학문적으로 정립된 개념은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학계에서도 △예족과 맥족을 분리해 보는 시각과 △예족 안에 맥족이 포함됐다는 주장 △맥족은 예족을 비하하는 칭호라는 견해가 뒤섞여 있다. 그나마 최근엔 한반도 남부는 한족(韓族), 중·북부는 예족(濊族)이 주로 거주했다는 입장이 통설이다. 박물관이 예족 중심으로 전시패널과 도록을 제작했던 이유도 이런 학계의 다수설을 반영한 것이다.
일각에선 영동과 영서로 나뉜 강원 내 지역감정이 예맥 논란으로 번진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게다가 정치권까지 개입하며 논란에 불을 붙인 형국이다. 현재 ‘국립춘천박물관 춘천지역 정체성 말살 춘천시민 대책위원회’엔 전직 춘천시장이 포함돼 있고 춘천시의회가 앞장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강원지역 선주민과 국가 형성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한 학자는 “감정싸움을 벌이기보다는 공개적인 학문 토론의 장에서 예맥 논란을 다루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