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January. 26, 2018 08:10,
Updated January. 26, 2018 08:47
‘釋迦大士 四十九年 橫說竪說’(석가모니께서 49년간 횡설수설하셨다)
횡설수설은 이랬다저랬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게 떠드는 말이다. 그런데 원뜻은 반대였다. 가로(竪) 세로(竪)로 거침없이 오가면서 알기 쉽게 조리에 맞게 설명해주는 걸 뜻했다. 석가모니가 불교를 전파할때 말과 단어를 적절하게 바꿔 가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는데 이를 횡설수설이라고 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100호째인 1920년 7월 25일자 1면에 ‘횡설수설’ 칼럼이 탄생신고를 한다. 첫 마디는 “천언만어(千言萬語)가 횡설수설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으나 웬걸…, 바로 다음 문장부터 인광이 번득이고 죽비로 내려친다. “걸핏하면 몇조 위반을 걸어서 인쇄기에서 떨어지는 신문지를 산더미같이 실어서 경찰서로 잡아가는, 언론자유라는 도금광고판이 잔해도 없이 참혹하게 유린되는 판”이라고 시대를 비판한다. 3·1운동 7주년 축전 게재로 무기정간을 겪고 난 뒤엔 “언론기관은 정지가 아니면 금지”라고 비판해 집필기자가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40년 8월 일제의 동아일보 강제폐간 조치로 횡설수설의 입도 닫힌다. ‘어디 두고 보자’는 외마디를 남긴채.
▷1955년1월1일 되살아난 횡설수설은 이승만, 유신, 5공 정부에 걸쳐 권력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이어간다. 4·19혁명 때인 1960년 4월 21일자는 “어제 장정들이 총탄에 맞아 나무토막처럼 쓰러지는 무시무시한 광경…그저 울음만이 복바쳐오른다. 하도 기가차니 붓대도 안돌아간다”고 했다.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숨진지 사흘뒤인 1월17일자에서 “박 군의 죽음은 돌이킬수가 없구나”라며 애통해한 것을 시작으로 근 한달간 거의 매일 통렬한 비판을 내뿜는다.
▷횡설수설은 올해로 만 98살을 맞는 국내 최장수 칼럼이다. 그러나 언론의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은 역사의 길이가 아니라 정신이다. 정확 신속 공정을 기하는 책임감이다. 32년전 동아일보 지령 2만호때 횡설수설은 이렇게 썼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 정신을 날로 회춘해가는 신문이야말로 장수를 누린다”. 횡설수설의 혀는 4만호, 10만호의 그날까지도 매일매일 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