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작년 10월 미국에서 자신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MeToo(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의 한국판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도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변호사였을 때도 못했던 일, 국회의원이면서도 망설이는 일”이라며 #MeToo를 올렸다. 정치권에서도 지지선언이 나오는 등 ‘미투 운동’이 한국에서도 확산할 조짐이다.
▷서 검사는 최근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에서 2010년 10월 벌어진 성추행 사건을 밝혔다. 동료 검사 부친 장례식장에서 당시 안 국장이 술에 취해 허리를 휘감고 엉덩이를 만졌다는 것이다. 그는 “소속청 간부들을 통해 사과를 받기로 하는 선에서 정리됐지만 그 후 어떤 사과나 연락도 받지 못했다”며 오히려 해당 사건 이후 “갑작스러운 사무 감사를 받으며…통상적이지 않은 인사발령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서 검사는 자신을 ‘여자’로 표현하며 8년 간 겪었던 고통을 기술했다. 성추행 트라우마로 유산을 했다는 사실도 털어놨다. 그는 살기 위해 잊으려 노력했지만 그 날 그 곳에서의 행동, 숨결, 그 술 냄새가 더욱 또렷이 새겨졌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 내 탓이다. 모든 것은 다 내 잘못이다”고 절규했다.
▷서 검사의 고백은 성추행 피해자가 얼마나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지 일깨워준다. 가해자 처벌 등 합당한 후속 조치가 뒤따르지 않으면 트라우마가 무의식 속에 남아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괴롭힌다. 공황장애, 우울증을 넘어 자살 충동 등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주변에서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응원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지난해 말 타임지가 미투 운동 참여자들을 뜻하는 ‘폭로자들(The Silence Breakers)’을 올해의 인물로 뽑은 것도 같은 의미다. 성추행 트라우마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치유의 대상’이 아니다. 다 같이 넘어야 할 ‘극복의 대상’이다.
길 진 균 논설위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