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8시(현지 시간) 영국 런던 바비칸 아트 갤러리.
바비칸 센터가 위치한 런던 금융 중심가 ‘더 시티(The City)’는 토요일 밤 쥐죽은 듯 조용했다. 하지만 갤러리 인근에 다다르자 학생부터 가족, 휠체어를 탄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영국에서 처음 열린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회고전 ‘바스키아: 붐 포 리얼(Basquiat: Boom for Real)’을 보기 위한 행렬이었다. 티켓 부스에선 “현재는 매진이라 오후 10시부터 입장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시 마감 하루 전 날, 갤러리는 자정까지 문을 열었다.
전시의 주인공 바스키아는 1960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17살에 학교를 떠나 길거리에서 낙서(그래피티)를 하며 ‘SAMOⓒ’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27살로 요절하기 전까지 ‘낙서를 예술의 경지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시장은 바스키아의 작품은 물론 노트에 적은 시, 길거리에서 팔았던 그림엽서와 작곡한 음악 등을 통해 ‘인간 바스키아’를 다각도로 보여줬다. 특히 바스키아가 소장했던 도서를 통해 그의 지적 깊이를 보여주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서고에는 미술사학 기본 교재인 H. W. 잰슨의 ‘서양 미술사’부터 해부학 교과서 ‘그레이 해부학’, ‘아프리카 벽화’,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전시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몰린 건 역시 100여 점에 이르는 회화 작품들. 그가 왜 젊은 예술가의 뮤즈인지 무언으로 설명했다. 랩을 하듯 수차례 눌러 쓴 글씨와 동시대 힙합, 재즈 문화에서 차용한 시각 언어가 신선한 감각을 자극했다. 힙합 아티스트 제이 지(Jay-Z)는 2013년 앨범에서 “내가 새로운 장 미셸”이라 노래하고 그의 작품을 수십억 원 어치를 소장했다고 한다. 지난해 5월 일본 기업가 마에자와 유자쿠는 경매에서 바스키아의 ‘무제’를 1억1050만 달러(약 1245억 원)에 구매했다.
약물 복용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바스키아는 작품 수가 많지 않다. 게다가 대부분을 개인 콜렉터가 소장하고 있어 이렇게 많은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기회가 흔치 않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전시는 갤러리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이 찾았다. 바비칸 측은 “1월 마지막 주말 3일 동안만 7000여 명이 전시장을 찾았다”며 “지금까지 최소 21만 6000명이 다녀갔다”고 밝혔다. 평균 티켓 가격이 16파운드(약 2만 4000원)임을 고려하면 입장 수익만 최소 51억 원에 이른다.
이런 전시가 다름 아닌 바비칸 아트 갤러리에서 열린 점도 주목해야 한다. 바비칸은 런던 특별행정구역 ‘더 시티’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 예술센터다. 대중성을 고려함과 동시에 젊은 예술가 등 다양한 세대가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체험하면서 얻게 될 문화적 가치도 더하려는 ‘공익’을 위한 전시 기획이었다. 제인 알리슨 비주얼아트 최고책임자는 “사상 최대의 성과에 전율했고 젊은 세대가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런던에서 문화학교 ‘RP Institute’를 운영하는 미술사가 전하현 씨도 최근 이러한 영국의 전시 트렌드에 주목했다. 그는 “최근 영국은 전시만으로도 수익을 창출하는 ‘창조산업’ 형, 대중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통’ 형 전시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한국 공공 미술관도 학술적 역할을 넘어 예술의 저변을 확대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런던=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