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화가로 바라본 조선화는 예술성이 탁월하단 점에서 또 다른 충격을 줬습니다. 북한 미술이 사실주의 미술 분야에서 독특한 경지를 일궈온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화가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64·사진)는 2010년 우연히 워싱턴에서 접한 북한 미술 작품에서 받은 충격을 이렇게 설명했다. 체제 선전용일 뿐일 거라는 기존 북한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과 달랐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 6년간 평양을 9차례 방문하며 본격적으로 북한 미술 연구에 뛰어들었고 이를 정리해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서울셀렉션)를 펴냈다. 이 책은 그간 베일에 가려 있던 북한 미술의 현장을 생생히 공개한다.
13일 만난 그는 “‘북한의 동양화’인 조선화는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 중에서도 독특한 표현 방법에 천착해 왔다”고 설명했다. 조선화는 외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전한 수묵 채색화로, 한국화는 물론 중국화와도 다르다. 사회주의 미술 특성상 예술적 평가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았지만 문 교수는 그간의 통념에 반기를 들었다.
“인간 내면의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과감한 붓 터치로 표현한 인물화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이렇게 시적이고 낭만적일 수 있을까 싶어요. 조선시대 선비화 양식을 이어받은 화가 리석호(1904∼1971)의 작품은 중국 근대미술의 대가인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에 견줘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문 교수는 평양미술을 연구하는 동안 안전하게 여정을 마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와 함께 경제적 타격 등 많은 것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화가의 감별력으로 북한 미술을 평가하는 데 사명을 느꼈다. 그는 “누가 좌냐 우냐 물으면 예술가라고 답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 워싱턴 아메리칸대에서 북한 미술 전시를 기획했던 그는 올해 9월 광주비엔날레에 북한 미술전 큐레이터로 참여한다. 집체화(여러 작가가 참여한 체제선전용 대형 작품) 4, 5점을 포함해 인물화 중심의 조선화 25점가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전시가 성사되면 국내에서 처음으로 북한 집체화가 대중과 만나게 된다. 문 교수는 “냉정히 말해 한국이 이념에 대해 두려워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정부 승인이 남아 있는데 북한 미술도 포괄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이념적 여건이 마련된 점을 감안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