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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춘(中關村), 그 후 7년

Posted March. 29, 2018 08:12,   

Updated March. 29, 2018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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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은 2000년 5월 서울의 용산전자상가와 비슷한 중국 베이징(北京)의 중관춘(中關村)을 첫 방문했다. 경제기반이 무너진 북한은 정보기술(IT) 산업에 관심이 많았다. 원자재를 투입할 필요 없이 프로그램을 작성할 인력과 컴퓨터 몇 대만 있으면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1년 중국 상하이(上海) 푸둥지구의 IT연구단지도 방문한 김정일은 IT산업 육성을 경제회복을 위한 이른바 북한식 ‘단번도약’의 핵심으로 봤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인근에 있는 중관춘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한 곳이기도 하다. ‘짝퉁’ 전자기기를 팔던 이 곳을 1988년 중국 정부가 첨단 산업단지로 첫 지정했다. 샤오미의 창업자 레이쥔은 여기 작은 오피스텔에서 먹던 샤오미저우(小米粥·중국식 좁쌀죽)의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었다. 알리바바의 마윈이 인터넷 검색 기술 제공 업체를 시작한 작은 호텔방도 중관춘에 있다.

 ▷‘북한식 개혁개방’을 꿈꾸던 북한은 주변 나라를 벤치마킹해왔다. 첫 경제특구인 나진선봉 지구의 롤모델은 리콴유의 장기독재 속에서도 경제성장을 해온 싱가포르다. 2002년 9월 지정된 신의주 특구도 홍콩식 일국양제(一國兩制)와 중국의 경제특구인 선전을 모방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고(故) 김정남은 일본 언론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투자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법과 시스템이 없는 북한에 투자할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위원장이 27일 아버지 김정일이 2011년 마지막으로 방문한 중관춘을 다시 찾았다. 북한 독재자가 7년 만에 방문한 중관춘은 과거 단순한 IT산업 중심지에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최첨단 기업 2만 여개가 모여 있는 중국 경제의 심장부가 됐다. 전 세계의 인재가 모여든 중관춘에 지난해에만 1100억 위안(약 19조 원)의 벤처투자가 이뤄졌다. 중국과 같은 소비시장도 돈도 인재도 없는 북한이 해외자본의 신뢰마저 얻지 못하면 대(代)를 이은 ‘중국 따라하기’는 성공할 수 없다.


정세진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