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야드를 남기고 3번 우드로 한 두 번째 샷이 그린 앞에 떨어진 뒤 핀을 향해 굴러갔다. 앨버트로스(기준 타수보다 3타 적은 것)가 되는 줄 알았던 공은 홀 오른쪽을 20cm가량 지나갔다. 18번홀(파5·518야드)에서 가볍게 75cm 이글을 낚은 리디아 고(21)는 눈물을 쏟으며 모처럼 맛본 우승에 감격스러워했다. 골프 천재 소녀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리디아 고는 3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레이크 머세드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디힐 챔피언십에서 연장 끝에 정상에 올랐다.
15세 때인 2012년 아마추어 신분으로 LPGA투어 첫 승을 올린 리디아 고는 여전히 10대였던 2016년 7월 18일 마라톤클래식까지 14승이나 올렸다. 골프 최연소 기록을 줄줄이 갈아 치우던 그는 이후 43개 대회에서 무관에 그치는 오랜 슬럼프를 겪다가 651일 만에 20대 들어 첫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한 리디아 고는 6번홀까지 보기만 3개를 해 3위까지 밀려났다. 이대로 주저앉는 듯했지만 13번홀에서 어프로치샷을 버디로 연결한 뒤 15, 18번홀에서 버디를 추가해 최종 합계 12언더파로 이민지와 동타를 기록했다. 주니어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호주 교포 이민지와의 연장에서 리디아 고는 티샷이 24야드 넘게 덜 나갔지만 컴퓨터 우드샷을 앞세운 이글로 이 홀에서 버디로 맞선 이민지를 제쳤다. 뉴질랜드 언론은 “지난 6년 동안 3만 번 이상의 샷을 했던 리디아가 최고의 한 방을 날렸다”고 평가했다. 미국 CBS 해설자는 “전설의 반열에 오를 만한 이글이었다”고 극찬했다.
스무 살이 된 지난해부터 리디아 고는 클럽, 스윙, 코치, 캐디 등을 바꾸며 제2의 도약을 꿈꿨으나 적응이 쉽지 않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앞만 보고 달리다가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번아웃 증후군이 생긴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아버지의 지나친 간섭이 부진을 불렀다는 보도도 있었다.
2017시즌을 무관에 그친 그는 예년과 달리 강도 높은 동계훈련을 소화했다. 늦잠과 여가를 즐기는 느긋했던 스케줄에서 벗어나 규칙적으로 필라테스와 근력 훈련 등에 매달리며 체중을 8kg 가까이 뺐다.
지난달 24일 21세 생일을 맞은 리디아 고는 “지난 14번의 우승 때는 운 적이 없는 것 같다. 어깨를 짓누르던 짐을 내려놓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며칠 전 생일 선물로 제시카 코르다(25·미국)에게서 보드카를 선물받았다. 부드러운 보드카라고 했는데 진짜 그런지 병을 따봐야겠다”며 웃었다.
리디아 고는 이날 우승한 골프장과 각별한 인연을 유지했다. 2014년 LPGA투어 데뷔 후 첫 승을 장식했다. 리디아 고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손목에 우승 날짜를 문신으로 새기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프로 데뷔 후 첫 대회 2연패를 장식한 곳이기도 하다.
김종석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