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서점에 가면 단기간에 큰 변화를 모색하는 화려한 책들이 앞자리에 앉아 있다. 그런데 나는 유능한 책보다는 이슈도 일으키지 못하고, 먼지를 쓰고 천천히 늙어가는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책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사람 중에도, 식물 가운데에도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그런 부류가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분명히 세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모든 것은 소중하다. 소중한 작은 것을 발굴하고 아끼는 마지막 분야가 있다면 아마 ‘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없는 것 같지만 있는 것. 안 중요한 것 같지만 중요한 것. 이것은 시의 영원한 주제다. 그리고 송찬호 시인은 이 영원한 주제를 즐겨 다룬다.
이 시는 내가 시를 읽는 이유다. 이제 시를 함께 읽는 동지들이 많이 사라진 마당이면서도, 여전히 시를 읽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시에 들어 있다. 바로 ‘채송화’ 말이다. 채송화는 키도 작고 크기도 작은 꽃이다. 시인은 길을 가다 멈추고 불편하게 쪼그리고 앉아 애써 채송화에 눈높이를 맞춘다. 흔하디흔한 그것을 시인은 귀한 분 보듯이 감탄하며 바라본다. 많은 의미도 부여한다. 그래서 시인의 눈에서 채송화는 소인국이라는 나라 수준으로 재탄생된다. 소인국을 장식하고 기리기 위해서 ‘무려’ 깨진 거울 조각과 고양이 수염과 비둘기 똥이 동원되었다. 그것들이 모여 소인국의 역사와 개성을 만들었다. 시인은 작은 존재가 지닌 놀라운 우주를 담아내고 있다. 작다고 해서 누구라도 함부로,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