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해 달라’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해 왔는데 어느새 내가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 힘들다. ‘잘하겠다’는 말을 더는 하지 않겠지만 100%로 준비하고 있으니 팀이 하나가 될 수 있게 도와줬으면 좋겠다.”
7일 졸전 끝에 볼리비아와 0-0으로 비긴 뒤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은 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그만큼 경기 내용은 기대에 못 미쳤다.
축구대표팀은 월드컵 남미예선에서 38골(18경기)을 내주고 탈락한 볼리비아를 상대로 무득점에 그쳤다. ‘깜작 선발’로 나선 선수가 많다 보니 패스 미스가 잦았고 강력한 압박도 실종됐다.
실망스러운 경기 결과에 대해 신태용 감독은 두 가지 설명을 내놓았다. 하나는 ‘체력훈련 후유증’이고 다른 하나는 ‘위장선발’이다. 강도 높은 체력훈련 결과 선수들의 몸이 무거웠다는 점, 정보 노출을 꺼려 베스트 멤버를 내세우지 않았던 점이 이날 부진의 이유라는 것이다. 이날 선수 구성은 일종의 ‘트릭(속임수)’이라는 표현도 썼다. 이에 대해 “언제까지 계속 실험만 할 것인가”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체력훈련과 위장선발에 대한 시각도 엇갈리고 있다.
○ 고강도 체력훈련의 효율성
“선수들이 ‘파워 프로그램(고강도 체력훈련)’을 하다 보니 몸이 무거웠다.”
신 감독 스스로 밝힌 내용이다. 대표팀은 볼리비아전 이틀 전인 5일 100분 넘게 체력훈련을 했다. 공중볼 다투기, 왕복달리기 등 격렬한 훈련을 한 뒤 대(大)자로 누워버린 선수도 있었다. 수비수 홍철(상주)은 파워 프로그램 이후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신 감독은 오스트리아 도착 첫날(4일) “선수들의 체력 수치가 만족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파워 프로그램을 하려면 한 달 정도 합숙해야 하는데 어렵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4일 밤 코칭스태프와 회의 끝에 전격적으로 파워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신 감독은 두 차례 더 파워 프로그램을 실시할 계획이다. 훈련과 휴식을 병행하며 선수들의 체력을 상승시키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본선 첫 경기(18일)가 2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실시한 체력훈련이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선수들은 체력적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겨내야 한다는 반응이다. 이재성(전북)은 “90분 동안 편하게 공을 찰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다. 반면 경합은 계속되기 때문에 몸싸움을 이겨내려면 체력훈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프로그램의 도입은 전적으로 선수들의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코칭스태프의 판단 영역이라면서도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봉주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박사는 “운동생리학적으로는 트레이닝의 효과가 나타나려면 통상 8주 정도 걸린다. 경기가 얼마 안 남은 지금 시점에는 체력훈련을 줄이고 전술훈련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운동 효과 외에도 투지나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부차적 효과도 있다. 다만 이 시기에 강한 체력훈련을 병행한다면 강약 조절을 잘하고, 훈련 중간에 휴식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 반복된 실험… 위장? 낭비?
신 감독은 지난달 21일 대표팀을 소집한 이후 3차례 공개 평가전을 치렀다. 온두라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평가전은 최종 엔트리(23명)를 가리기 위한 테스트 차원이어서 정예 멤버의 가동이 힘들었다. 하지만 최종 엔트리 완성 후 오스트리아에서 치러진 볼리비아전에서도 실험적 선수 구성을 들고나와 논란이 일었다. 베스트 11을 가동해 조직력을 다져도 부족한 시간에 또다시 실험을 반복해 실전 경험을 쌓을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볼리비아전에서는 손흥민(토트넘) 등 주전이 유력한 선수들 대신 김신욱(전북), 문선민(인천) 등이 선발로 나와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신 감독은 “볼리비아전 선발 구성은 ‘트릭’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 감독은 정예 멤버의 조직력을 가다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훈련을 할 때마다 1시간 정도 가상의 스웨덴을 만들어 놓고 비공개로 조직훈련을 한다. 그런 모습을 공개하지 않다 보니 시간이 부족한데도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 감독이 위장선발을 내세운 점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장지현 SBS 해설위원은 “이승우(베로나), 문선민 등 조커가 유력한 선수를 선발로 내세워 조커끼리 손발을 맞출 시간을 준 것으로 볼 수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반면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볼리비아전은 팀의 밑그림을 보여줘야 하는 경기다. 본선 첫 경기 스웨덴전에 대비한 상황 대처 연습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로드맵이 약간 틀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표팀은 세네갈전(11일·비공개)에서 베스트 11을 가동한다.
김재형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