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망할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새의 날개 한쪽이 부러져 가고 있다. 자극적인 선동처럼 들리겠지만 실제 보수 정당의 몰락이 6·13지방선거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텃밭인 영남을 제외하고는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참패할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의 지지를 받지 못한 세력이 정치무대에서 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흔한 일이다. 물론 보수 정당이 선거에서 부진하다고 해서 한국인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보수적 가치가 궤멸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권자의 마음은 세상과 함께 변하고 있고 정당도 이에 적응하고 있지만, 한국의 보수 정당은 여전히 과거 가치에 머물러 있다. 유망한 젊은 보수 정치인들의 성장도 보이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보수 정당에 대한 믿음을 철회했으며 그들의 철 지난 메시지에 지겨워한다. 남북 공존과 평화라는 역사적 모멘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질적인 목소리를 모아 협력적 혁신을 창출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에 부정적인 신호다.
보수 정당은 선거 결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여론조사에서 지지를 솔직하게 밝히지 못하는 현상, 소위 샤이 보수(shy conservatives)의 존재에 희망을 걸고 있는 듯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실언과 기행을 부끄러워하는 보수 정당 지지자가 응답을 꺼리기 때문에 실제 선거 결과는 이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실제 투표에서 보수 정당에 투표했던 사람에 비해 설문에서 보수 정당에 투표했다고 응답하는 사람의 비율이 낮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면접원과 직접 대화할 필요가 없는 자동응답시스템(ARS) 설문조사에서는 그래도 한국당의 지지율이 전화 면접 조사에서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것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 숨은 보수 야당 지지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그나마 비교적 일관적인 발견은 ARS 조사에서 20대와 30대, 그리고 중도적 이념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한국당 지지가 전화 면접 조사의 동일한 집단에서보다 약간 더 높다는 것이다. 과거 지방선거에서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이 더 낮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령 샤이 보수가 존재해도 실제 선거 결과를 바꾸진 못한다. 모든 연령에서 투표율이 일정하게 높아도, 샤이 보수의 존재가 현재 여당과 야당 간 지지율의 상당한 격차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다. 투표 행위에 대한 연구는 보수 정당을 지지하나 전화 면접 조사에서 이를 숨기는 중도 성향의 유권자는 아예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음을 지적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샤이 보수는 없다.
어쨌건 좌우로 나는 새의 한쪽 날개가 불안정한 상태를 지속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불행이다. 그러나 보수 정당이 예견되는 패배의 원인을 자신의 과오에서 찾지 않고 여론조사 탓만 한다면, 참신한 메시지는 없으면서 집권 여당의 허물이 부각되기만을 기다린다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국민을 진심으로 설득하는 데 무관심하다면, 정치 후속 세대를 길러내는 데 게으르다면 우리는 보수 정당으로부터 아주 조금 남은 희망조차도 거둬들여야 한다.
보수의 몰락은 촛불 정국과 대통령 탄핵을 통해 단기간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허물어져 가는 민생과 권력에 대한 분노를 무시하고 불투명하고, 불공정하며, 불평등한 나라를 만든 과거 집권 보수 정당에 대한 국민의 냉엄한 평가다. 어제의 반성도, 오늘의 메시지도, 내일의 꿈도 없는 정당을 지지할 유권자는 없다. 보수 정당이 재기를 모색한다면, 최소한 다음의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은 심화되는 불평등과 어떻게 양립 가능한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청년들이 다시 꿈을 꾸게 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공존을 실현할 수 있는 차별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보수 정당이 진정성 있고 구체적인 대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지방선거를 통해 보수는 산산이 부서져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 조그만 희망이라도 움튼다. 하지만 부서지기만 하고 말 것만 같아 두렵다. 보수는 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