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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강제로 옮긴 덕수궁 광명문, 80년 만에 제자리 찾는다

일제가 강제로 옮긴 덕수궁 광명문, 80년 만에 제자리 찾는다

Posted June. 20, 2018 07:17,   

Updated June. 20, 2018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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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 안을 거닐다 보면 돌담길과 마주한 남서쪽 후미진 곳에서 광명문(光明門)을 발견할 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겹처마와 팔각지붕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문으로서의 역할은 상실했고, 내부에 물시계(자격루)와 종(흥천사명 동종) 등이 놓여 있는 유물 전시 공간으로 쓰일 뿐이다.

 원래 이 문은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침전으로 사용한 함녕전(咸寧殿)의 남쪽에 위치하며 정문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덕수궁을 멋대로 쪼개고 허무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1938년 덕수궁 내부에 이왕가미술관을 개관하면서 광명문을 지금의 자리에 강제로 옮겼고,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80년 동안 엉뚱한 공간에 방치된 광명문이 제자리를 찾는다. 문화재청은 문화재계 인사 100여 명과 함께 19일 광명문 앞에서 ‘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 기공식을 열고, 광명문 이전 공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앞서 2016년 함녕전 남쪽 구역에서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광명문의 배치 상태와 평면 형태 등이 같은 건물지 1동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문화재청은 올해 말까지 광명문 이전을 완료할 계획이다.

 광명문 내부에 있던 창경궁 자격루(국보 제229호)와 신기전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흥천사명 동종(보물 제1460호)은 경복궁 궐내각사지의 임시 처리장으로 옮겨져 보존 처리될 예정이다.

 광명문 이전과 함께 돈덕전(惇德殿), 선원전(璿源殿) 등 덕수궁 복원 사업도 본격화된다. 돈덕전은 1902년 고종 즉위 40년을 맞아 서양식 연회장으로 지은 건물로, 1907년 순종이 즉위한 곳이다. 하지만 순종이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긴 후 덕수궁 공원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왕의 초상 어진을 봉안하던 선원전은 고종이 승하한 뒤 헐렸고, 광복 이후에는 경기여고 터로 쓰이다가 최근에는 주한 미국대사관에 양도됐다. 우리나라에 다시 소유권이 넘어온 것은 2011년이다.

 문화재청은 “돈덕전은 2021년, 선원전은 2038년까지 단계적으로 복원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일제에 의해 변형·왜곡된 우리 궁궐의 위상을 회복하고 대한제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원모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