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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일성家는 3•1운동에 참여했나

Posted July. 14, 2018 07:26,   

Updated July. 14, 2018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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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1894∼1926)이 키워낸 애국지사와 청년 학생들이 3·1 봉기에 앞장섰다고 주장한다. 김형직이 3·1운동의 실제 주역이자 배후이며 김일성도 여덟 살에 평양 보통문 반일 시위에 참가했다고 한다.

 북한은 김형직을 3·1운동의 배후 주역으로 내세우는 근거로 ‘조선국민회’라는 국내 비밀 결사단체를 제시한다. 조선국민회는 1917년 3월 평양에서 결성된 뒤 1918년 2월 일제에 의해 해체돼 1년이 채 안 되게 존속했다. 북한은 김형직이 이 단체를 주도적으로 결성했고 이 단체의 중요 인물들이 평양 등지에서 3·1운동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인민문화궁전에서 결성 100돌 기념행사도 가졌다. 

 사실은 어떠할까. 조선국민회는 20, 30대의 평양 숭실학교 출신 청년들이 주도해 결성한 결사단체임은 분명하다. 권총을 의미하는 ‘돼지다리’라는 암호를 사용해가며 무기를 구입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 하와이의 박용만 조직과 연계해 국내외 독립운동 소식을 전국에 알리는 일도 했다.(강영심의 ‘조선국민회 연구’)

 그런데 조선국민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이가 김형직이라는 증거는 안 보이고 다른 이가 주역이었다는 증언이 많다. 조선국민회의 핵심 간부였던 배민수는 “숭실고 건물에 모여 ‘대한국민회 조선지부’를 조직했다. 나의 친구 장일환이 회장이었고 백세빈은 외국통신원, 나(배민수)는 서기와 통신부장을 겸했다. 조직원은 30명으로 모두 믿을 만한 숭실학교 친구들이었다”고 회고했다.(‘배민수 자서전’) 

 장일환이 실제적 지도자였다는 것은 일제의 평안남도 경무부장이 회원 25명을 체포한 후 작성한 조사자료(秘密結社發見處分件, 秘受3725號)에도 나온다. 이 문건에서 언급한 중요 인물 순서에서 김형직은 장일환, 백세빈, 배민수에 이어 네 번째로 등장한다.

 강영심 연구원(이화사학연구소)에 따르면, 김형직은 조선국민회 사건 이후 중강진으로 이사한 뒤 1925년 중국 지린(吉林)성으로 옮겨 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正義府)계 백산무사단과 연계해 활동하다 이듬해 사망했다. 

 북한은 3·1운동에 김형직, 김일성 부자가 참여했다고 주장하면서도 3·1운동은 혁명에 실패한 운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33인 민족대표가 주도한 성공적인 비폭력 평화 운동으로 보고 있다. 남북의 시각이 완전히 엇갈린다.


안영배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