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 중이던 BMW 520d 차량에 잇따라 화재가 일어나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 파악이 안 돼 소비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BMW코리아와 국토교통부가 지목한 사고 원인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이 “납득하기 힘들다”고 반박하면서 발화 원인이 미궁에 빠지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에만 BMW 화재 사건은 27건, 이 중 520d 차량 화재는 16건에 이른다.
BMW코리아와 국토부는 배기가스 재순환 장치(EGR) 모듈 이상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지난달 26일 리콜을 발표했다. EGR는 디젤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배기가스를 식혔다가 내부에서 재순환시키는 장치다. 400도가 넘는 배기가스는 EGR 쿨러(냉각기)에서 식혀진 후에 엔진에서 재연소된다. 문제는 배기가스를 식혀주는 냉각기에 누수 등 결함이 생기면 고온 가스가 그대로 흡기 라인으로 유입돼 구멍을 만든다. 이 구멍으로 고온 가스가 새나가면서 차가 과열돼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BMW 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문제가 된 EGR 부품은 한국 기업이 만들었지만 독일로 수출해 글로벌 BMW 디젤 차량에 들어간다. 유럽에서 팔리는 520d에도 들어간다는 얘기다. 또 이 제조사의 EGR는 현대·기아자동차에도 납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외에서 EGR 관련 리콜은 없었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 영국에서 잇달아 화재 위험으로 170만 대 리콜이 진행됐지만 냉난방 시스템 배선 과열 등이 원인이었다.
한국에서 유독 BMW의 EGR 모듈이 문제가 된 것에 대해 일부 전문가는 소프트웨어(SW) 설계를 문제로 지목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하드웨어(부품)는 세계적으로 같아도 각국 환경기준에 따라 SW는 달라진다. 한국에서만 공기청정도를 높이기 위해 EGR가 과열되도록 SW 시스템을 운용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동일 차종, 동일 부품인데 한국에서만 문제가 됐다면 SW 시스템 설계를 의심해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SW 문제 가능성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높은 유럽 환경기준에 맞춘 후 한국에 오기 때문에 SW 세팅이 (유럽과) 다르지 않다. BMW의 리콜 계획서를 전문가 검토 후 승인한 것”이라고 했다. 국토부는 다만 구체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계속 조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장 BMW 차주들은 자칫 대형 사고로 번질까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2013년 BMW 520d를 구입한 김현우 씨(42)는 “오늘 아침에 화재 전 전조증상이라는 엔진 경고등이 켜졌다. 가장 겁이 나는 것은 지하 주차장에서 불이 나 내 차뿐 아니라 다른 차나 인명 피해를 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BMW는 화재 우려로 대규모 리콜을 진행하며 ‘지하 주차장이 아닌 야외에 주차해 달라’고 권고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폭염 속에 고속 및 연속 주행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고 있다.
차량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차량용 소화기 판매량은 급증하는 추세다. 온라인 오픈마켓 옥션에 따르면 올해 6월 30일∼7월 29일 한 달 동안 차량용 소화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99% 늘었다.
김현수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