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포토세션이 진행되고 있던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
비핵화 로드맵을 놓고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짧게 조우했다. 외교장관회의를 앞두고 열린 기념촬영장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먼저 리 외무상을 찾아가 악수를 건넨 것.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폼페이오 장관은 리 외무상의 등을 두들기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리 외무상도 웃으며 손을 잡았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폼페이오 장관이 ‘우리는 곧 다시 만나야 한다’고 말하자 리 외무상이 ‘동의한다. 해야 할 많은 건설적인 대화가 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기념촬영 이후엔 성 김 주필리핀 미대사가 리 외무상에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서한을 전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군 유해송환을 계기로 1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의 답신이다. 여성 외교장관 기념촬영으로 청중들의 눈과 귀가 무대 위에 쏠려 있는 사이 김 대사는 리 외무상에게 다가가 밀봉되지 않은 회색 서류봉투를 건네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자리로 돌아간 리 외무상이 봉투 속 내용물을 확인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ARF 회의 일정을 마친 직후 트위터에 “우리는 간단하고 정중한 대화를 나눴다”고 밝히며 트럼프 대통령의 답서를 전달했다고 직접 밝혔다.
이번 회의에서 기대를 모았던 북-미 외교장관의 양자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양측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으면서 어떤 식으로든 대화의 끈은 이어갔다. 교착상태인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정상 간 소통으로나마 유지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례적인 서한 전달방식도 눈길을 끌었다. 친서는 통상 대통령 특사가 안전장치가 된 서류 가방에 담아 옮기거나 밀봉된 상태로 전달하는 것이 관례. 하지만 밀봉돼 있지도 않은 서류 봉투를 공개 행사장에서 전달한 것을 놓고 트럼프의 친서를 급히 전달해야 했던 미국의 상황을 보여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린 다자 외교무대에서 두 장관이 최소한의 친밀한 분위기를 공개적으로 연출한 만큼 교착상태인 북-미 비핵화 후속 협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물밑접촉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