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3년 6월 도자기 2만 점과 동전 약 28t 등을 실은 무역선이 중국 경원(慶元·현재 저장성 닝보)에서 일본 하카타(博多·후쿠오카)로 떠났다. 하지만 항로를 벗어난 배는 전남 신안군 앞바다에 침몰했다. 1975년 8월, 한 어부의 그물에 청자 꽃병이 걸려 올라오면서 난파선은 652년 만에 잠에서 깨어났다.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의 출발을 알린 ‘신안선’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근 신안선에서 발견한 ‘흑유자(黑釉瓷)’ 180점을 선보이는 이색적인 전시회를 열었다. 흑유자는 차(茶) 문화가 성행한 중국 송나라 때 유행했다. 서양에서 거품을 얹은 카푸치노가 유행한 것처럼, 당시 동아시아에서도 거품을 일으킨 차가 인기를 끌었다. 이에 하얀색 거품 색깔이 돋보이는 검은색 찻잔을 애용했다.
흑유자는 황실이나 귀족이 주로 이용해 공예 수준이 높은 게 특징. 이번 전시에는 섭씨 1300도 고온에서 철 무늬가 흘러내리며 만들어진 토끼털 무늬 장식 흑유자와 불교 선종(禪宗) 사상을 형상화한 치자 꽃무늬 도자기 등을 공개한다.
김영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신안선 흑유자를 통해 거품을 내어 차를 마시는 점다(點茶) 방식에서 찻잎을 끓이거나 우리는 포다(泡茶)로 변해가는 동아시아 차 문화의 변천사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