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데 땀 뻘뻘 흘리며 옮겨 다닐 필요 없다. ‘카페+식당+갤러리+공연장+아카데미’가 한군데 있는 복합문화공간에 가면 된다. 이런 곳은 최근 도심에 흥미로운 공간 디자인과 뚜렷한 취향으로 무장하고 도심에 속속 들어서고 있다. ‘동네 문화 리조트’라고 할 수 있는 곳에 한번 들어가면 한나절은 훌쩍 지나간다.
“행인들이 지나가다가 ‘스윽’ 들어오도록 설계했습니다.”
건축가의 의도는 잘 맞아떨어진 듯했다. 9일 오전 찾은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의 ‘사운즈 한남 어반 리조트’. 평일 오전임에도 생수통을 든 조깅복 차림의 외국인 여성, 유모차를 끌고 나온 ‘라테파파’, 정장 복장의 여성 등으로 북적댔다. 인스타그램 인증사진 폭발에 ‘힙스터’들이 줄 선다는 ‘뜨는 명소’다웠다.
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가 세운 디자인·컨설팅 회사 ‘JOH’가 올해 4월 선보인 공간이다. 다섯 개의 건물에 JOH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정성껏 담았다. 건물 1, 2층에 입점한 상점 상당수는 JOH가 운영하는 브랜드다. 한식당 ‘일호식’, 레스토랑 ‘세컨드키친’, 카페 ‘콰르텟’, 서점 ‘스틸북스’ 등이다. 가나아트센터의 전시관인 ‘가나아트 한남’, 세계 3대 경매사인 ‘필립스’의 한국사무소, 뷰티 브랜드 ‘이솝’, 안경점 ‘오르오르’, 꽃집 ‘브루니아 플라워’ 등도 있다.
건물 4개 층을 통째로 쓰는 ‘스틸북스’에선 저자나 명사를 초청해 강연도 종종 연다. 앞으로 앞마당 격인 중앙정원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곳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도 많다. 중앙과 2층에 아담한 정원이 있는 데다 공간이 미로처럼 설계돼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서울 중구 퇴계로6가길에 자리한 ‘피크닉’의 정문은 개방형 주차장이다. 주차장과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 내리막길을 따라가면 주황빛 건물이 나온다. 1970년대 지어진 제약회사 건물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는 방문객 상당수는 회현역 쪽 후문으로 들어온다.
전시기획사 글린트가 운영하는 피크닉의 공간 디자인은 지루하지 않다. 복도, 창문, 텃밭, 테라스, 루프톱, 지하 등이 결합돼 개미굴을 탐험하는 듯한 재미를 준다. 내부는 하얗게 단장하되 촌스러운 1970년대 일부 바닥재는 그대로 살렸다. 지하 1층∼지상 4층 건물엔 전시 공간, 카페 ‘피크닉’, 서래마을에서 옮겨온 레스토랑 ‘제로 콤플렉스’, 디자이너 상품을 판매하는 ‘키오스크×키오스크’가 자리한다.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작물을 키우는 텃밭과 루프톱 라운지도 있다. 하나로 이어진 기다란 테이블과 샹들리에가 인상적인 카페 피크닉은 오후 6시 이후엔 타파스 바인 ‘바 피크닉’으로 변신한다.
지하부터 루프톱까지 이어지는 전시관에서는 10월 14일까지 ‘류이치 사카모토: Life, Life’가 열린다. 음악가뿐 아니라 사회활동가인 그의 면모를 담은 기획전이다. 맨 위층에는 사카모토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눈부시게 하얀 건물이 나온다. 평창길 339에 자리한 문화예술공간 ‘수애뇨339’다. 종로에서 출생한 김창환 씨(79)가 가족과 20년 넘게 거주하던 곳이 동네 문화사랑방으로 변했다. 지난해 문을 연 이곳은 각지에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명소가 됐다. 사실상 1층인 지하 1층 카페에 들어섰다. 북한산 자락이 훤히 내다보이는 전경에 한 번, 테이블 개념 없이 하나로 탁 트인 내부 공간에 또 한 번 설렜다. 수애뇨는 지하 1층과 지상 2층 등 모두 3개 층으로 이뤄졌다. 지하 1층엔 카페 겸 공연장, 1층엔 전시장, 2층엔 대관 가능한 모임 공간이 자리한다. 이곳의 시그너처 공간은 지하 1층의 ‘푹 꺼진 직사각형’이다. 바닥 면보다 45cm가 낮은 이곳에선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열린다.
운영은 김 씨의 4남매 중 세 딸이 맡고 있다. 악기를 전공한 첫째 딸과 막내딸이 공연을, 둘째 딸은 미술 전시를 기획한다. 공연은 매월 마지막 주에 열리고, 미술 기획전은 수시로 열린다. 이달에는 피아니스트 김재원이 이끄는 ‘클럽M’이 23일 무대에 선다. 수애뇨의 철학은 ‘문턱이 낮은 문화공간’. 커피와 샌드위치 먹으러 왔다가 격조 있는 예술을 만나는 공간을 꿈꾼다. 스페인어로 ‘꿈, 쉼’을 뜻하는 수애뇨(수에뇨)에서 쉬면서 꿈꾸고, 그러다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게 김 씨 가족의 바람이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사유’는 무엇보다 가성비가 뛰어나다. 1층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의상 편집숍인 2층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5개 층은 콘셉트가 모두 다르다. 지하 1층은 새로운 브랜드를 소개하는 팝업스토어 겸 공연 공간, 1층은 클럽 분위기 카페, 2층은 의상 편집숍, 3층은 미디어아트 카페, 4층은 갤러리 카페, 5층은 루프톱이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사유는 전시와 공연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휴가철을 맞아 8월 12일까지 오키나와 관광청과 손잡고 ‘사유오키나와’를 선보인다. 3층 미디어아트 카페에선 오키나와 수족관 속 물고기 떼가 헤엄치고 있었고, 4층 갤러리 카페엔 관련 이미지가 걸려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