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를 지나 서울에 진입하면 갑자기 정체가 심해진다. 17개 차로에 걸쳐 늘어서 있던 요금소 통과 차량이 한꺼번에 5차선 도로로 몰려들어서다. 병목 현상이다. 마감 세일을 하는 마트 매대 앞을 통과하는 사람, 불이 난 공연장에서 비상구를 통해 급히 탈출하는 사람도 비슷한 일을 겪는다. 병목 현상을 피할 수 있는 묘안이 있을까. 17일 학술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미국과 독일 연구팀이 개미의 행동을 물리학적으로 연구해 해법을 찾았다. 비밀은 뜻밖에 ‘게으름’과 ‘불평등한 일 배분’에 있다.
1. 조직원의 70%는 게으름을 피우는 게 좋다.
대니얼 골드먼 미국 조지아공대 물리학과 교수팀은 불개미 30마리를 진흙과 비슷한 유리알로 채운 용기에 가둔 뒤 이들이 땅굴을 파는 모습을 이틀 동안 관찰했다. 각각의 개미는 땅속의 유리알을 밖으로 파내며 수백 번씩 구멍을 드나들었다. 그런데 전체의 3분의 2 이상은 거의 일을 하지 않고, 약 30%의 개미가 땅 파는 작업의 대부분(70%)을 해치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2∼31%의 개미는 단 한 번도 땅에 들어가지 않고 빈둥거렸고, 그나마 굴에 들어갔던 개미 중 상당수는 유리알을 파내지 않고 그냥 나오기 일쑤였다. 교대하거나 이동하는 개미를 제외하면 매 순간 땅속에서 실제로 일하는 개미 수는 더욱 적어져서 전체의 7∼10%만이 일을 했다.
집단 구성원의 대다수가 게으름을 피운다니 언뜻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 연구팀은 수학 모델을 통해 이게 오히려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논문 제1저자인 제프 아길라 조지아공대 기계공학과 연구원은 e메일 인터뷰에서 “좁은 곳에서 동시에 너무 많은 수가 일하는 상황만큼은 꼭 피하라는 게 개미의 교훈”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소수가 집중적으로 일하고 나머지가 게으름을 피우는 불평등한(unequal) 업무 할당이 최적의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현실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방에서 150명이 비상 탈출을 한다면, 모두가 동시에 빠져나가려 애쓰기보다는 10∼15명 정도의 소수가 길을 열게 하고 30명이 교대해서 일을 도우며, 나머지 100여 명은 그냥 차분히 앉아 기다리는 편이 현명하다.
2. 리더는 필요 없다. 누가 일할지는 상황이 결정한다.
연구팀은 일을 도맡은 30%의 개미들이 유능해서 많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발견했다. 연구팀이 가장 열심히 일한 개미 5마리를 무리에서 빼냈다. 그러자 다른 개미들이 땅을 파는 작업에 대신 투입됐다. 개미 수가 줄어들었지만 업 효율은 똑같이 유지됐다. 누가 일하는지, 그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는 전체 효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다. 일을 배분하는 리더 역시 필요 없었다. 누가 일할지는 순전히 주어진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우연히 결정됐다.
연구팀이 단지 흥미를 위해 개미를 관찰한 것은 아니다. 지진이나 붕괴사고 등 재난 현장에서 잔해 더미를 치우며 사람을 구조하는 인공지능 군집로봇에 이 법칙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실험을 했다. 좁고 긴 통로에 건물 잔해를 흉내 낸 엄지손톱 크기의 자석 공을 가득 담은 뒤 어른 주먹만 한 바퀴벌레 모양의 자율주행 로봇을 1∼4대까지 투입하며 잔해 제거 작업 효율을 비교했다. 그 결과, 개미와 마찬가지로 모든 로봇을 다 출동시켰을 때보다 일부(한 대)가 쉴 때 좀 더 효율적으로 작업을 완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개미와 쉬는 비율이 다른 것은 로봇의 판단력과 기능이 개미보다 떨어지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아길라 연구원은 “로봇 성능을 개선해 보다 정밀한 전략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신영동아사이언스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