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자신의 사랑을 돌려주지 않는 그림자에 절망해 목숨을 버린다. 프로이트에게 나르시스 신화는 인간 심리의 비밀을 푸는 열쇠였다. 그의 말처럼 자기애나 자아도취는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은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에서 자기 아닌 타인을 본 시인이 있었다. 연암 박지원이 그랬다. 연암의 시는 나르시스의 자기애를 일거에 해결한다. ‘연암에서 형을 생각하며’라는 4행시의 마지막 두 행은 그야말로 절창이다. “오늘부터 형이 생각나면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두건 쓰고 도포 입고 냇물에 비친 나를 보리라.”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형을 그리워하겠다는 말이다.
그 형님이 누구인가. 지난 20년 동안 연암에게는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던 일곱 살 위의 형이었다. 연암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형을 바라보았다”. 얼굴과 수염을 비롯한 많은 것들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서였다. 그런데 그 형이 죽었다. 연암의 나이 쉰한 살 때였다. 형이 죽으면서 그는 아버지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 그는 놀라운 대체물을 찾아냈다.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였다. 거기에서 형의 모습을 확인한 것이다. 그가 두건을 쓰고 도포를 입은 것은 형이 생전에 늘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그림자에서 형을 보고, 또 그 형을 통해 아버지를 보는 눈, 이보다 더 아름다운 그리움과 애도의 노래가 또 있을까. 조선 후기의 박학다식한 실학자 이덕무가 이 시를 읽고 감동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의 그림자는 자기파멸적인 자기애의 그림자였지만, 냇물에 비친 연암의 그림자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환기하는 이타적인 그리움과 애도의 그림자였다.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에서 내가 아닌 타인의 현존을 확인하다니! 나르시스 신화가 창백해지는 순간이다.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