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인환이라고 하면 다방과 미남, 멋과 낭만을 연상하게 된다. 영국에 바이런이 있다면 한국에는 박인환이 있다고나 할까. 훤칠한 장신이었고 누구보다 옷차림에 신경 쓰는 멋쟁이였다고 한다. 밥은 굶어도 커피는 굶지 않는 신조가 있었고, 입담이 좋고 발이 넓어 어디를 가나 환영받는 인사였다고도 한다.
그에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일화는 시 ‘세월이 가면’이 노래로 탄생하는 장면이다. 요청을 받아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고, 곁에 있던 작곡가가 바로 곡을 붙이고, 함께 있던 음악가가 바로 노래를 불렀다는 일화다. 문학과 음악이 만나 마법을 부린 듯해서 이 일화를 들으면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박인환에 전해져오는 이미지들은 다소 화사하거나 화려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박인환을 멋진 낭만주의자로만 생각하면 시인이 좀 억울해할 수 있다. 박인환의 낭만은 ‘세월이 가면’과 ‘목마와 숙녀’와 같은 시로 대변되지만, 그의 시를 읽다보면 낭만이 아닌 ‘삶’ 혹은 ‘생명’에 대한 진실함이 중심인 경우가 많다. 그는 단순히 화려한 낭만주의가 아니었던 것이다. 박인환은 사석에서 농담을 즐겨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도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박인환의 진실한 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엄청 멋지다는 감탄사는 나오지 않지만 박인환의 맨얼굴을 여실히 드러내는 소박함이 돋보인다. 시인은 고단한 삶을 극복하는 푸른 희망을 이야기한다. 박인환의 낭만이란 기실, 이렇게 따뜻한 희망 위에서 피어났던 것이다.문학평론가
이원주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