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조는 세계가 경탄하는 최고의 음악입니다. 55분의 연주시간에 구구절절한 인생이 모두 담겨 있죠. 일본에서 공연할 때 일본의 고토(箏) 연주자가 가야금산조와 한 무대에 서는 걸 기피할 정도였어요.”
가야금 명인 양승희 씨(69·중요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병창 및 가야금산조 보유자)가 서울에서 처음으로 가야금산조 전문 전수기관을 세웠다. 서울 서초구 사임당로 ‘정효문화재단’ 건물에 입주한 ‘가야금산조기념관’이다.
최근 열린 개관식 현장에서 만난 양 씨는 “나라의 수도인 서울에 전수관을 열어 학생들이 더욱 쉽게 가야금산조를 배우게끔 하겠다”면서 “장기적으로는 가야금산조가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도록 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말했다.
개관식 행사에는 국악계의 별들이 총출동했다. 안숙선 이춘희 이생강 김청만 민의식 이지영 등 명인들이 릴레이 축하 무대를 이어갔다. 강원 원주와 전남 영암의 어린이 가야금연주단도 무대에 올랐다.
양 씨는 김죽파 명인(1911∼1989)의 직계 제자다. 김 명인은 산조 음악의 창시자인 김창조 명인(1865∼1919)의 손녀. 가야금산조의 적통을 양 씨가 이어받은 셈이다. 양 씨는 “김창조 선생의 고향이자 가야금산조의 본향인 전남 영암에 2014년 첫 전수관을 세운 뒤, 강원 원주에 이어 마침내 서울에 산조 교육관을 마련하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양 씨에게 가야금산조는 평생의 숙명이다. 김죽파 명인은 제2의 어머니와 다름없다고 했다. “대학 1학년 때 제자가 된 뒤 김 명인의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면서 “결혼을 할 때 제 시어머니가 결혼 허락을 김 명인께 받았을 정도”라고 했다. 김 명인은 당시 양 씨의 시모에게 “(양)승희는 산조의 대를 이어가야 할 아이다. 가야금 전수를 계속하게 하면 결혼을 응낙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1989년 김 명인이 타계한 뒤 양 씨는 방황하기도 했다. “대학 강의를 그만두고 다시 소리를 파고들었어요. 가야금뿐 아니라 판소리, 철금, 아쟁, 가야금병창을 두루 16년간 다시 공부했지요.” 아쟁으로는 저음, 철금으로는 맑은 음색, 판소리는 서사와 정서를 각각 연마해 가야금에 응용했다.
양 씨는 1999년의 어느 날을 잊지 못한다. “득음이랄까요. 김기창 화백(1913∼2001)의 금붕어 그림을 보면서 가야금을 연마하는 데 휘모리장단을 타니 어느 찰나에 금붕어 꼬리가 눈앞에서 움직이는 듯 보였거든요.” 이 사연은 1999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듣기평가에도 소개됐다. 양 씨는 “제자와 후손들이 산조를 바탕으로 베토벤처럼 세계적 고전이 되는 음악을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희윤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