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서 여성은 늘 남성 화가들의 모델이자 객체였다. 여성이 화가로서의 주체가 된 건 19세기 말 아카데미가 여성을 받아들인 이후부터다. 비록 미술사에 기록되진 못했지만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은 분명 존재했고, 그중엔 바로크 미술을 이끌었던 미하엘리나 바우티르도 포함된다.
바우티르는 17세기에 활동했지만 비교적 최근에 발견돼 주목받는 화가다. 그의 그림들은 수백 년 동안 남성 화가가 그린 것으로 여겨졌다. 1604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바우티르는 화가였던 남동생과 함께 벨기에로 이주해 그곳에서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전문 화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정물이나 초상화뿐만 아니라 남성 화가의 영역이던 역사, 종교, 신화를 주제로 한 큰 그림들도 제작했는데, 이 그림이 대표작이다. 가로 3m가 넘는 거대한 화면 속엔 로마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바쿠스의 행렬이 묘사돼 있다. 바쿠스가 탄 수레를 양아버지인 실레노스와 반인반수인 사티로스가 끌고 있고, 바쿠스의 사제들을 비롯한 무리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따르고 있다. 일행 중 두 명은 만취한 신에게 계속 술을 권하고 있다. 화가는 바쿠스를 젊고 관능적인 신의 모습이 아니라 배가 불룩 나온 비만에 초점 잃은 눈으로 절제 없이 술을 들이켜는 만취한 남자로 묘사했다. 화면 오른쪽에는 한쪽 가슴을 드러낸 의문의 여성이 등장한다. 흥에 취한 무리들과 달리 화면 밖 관객을 응시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이 여성. 바로 화가 자신이다. 여성은 누드를 그릴 수도 배울 수도 없었던 시대에 그녀는 남자 누드는 물론 가슴을 드러낸 자화상을 그림으로써 여성 화가로서의 강한 자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사회적 관습과 금기에 도전했던 바우티르는 남성 누드를 그린 최초의 여성 화가이자 해부학적 지식을 갖추고 모델까지 두었던 전문 화가였다. 올해 6월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는 시대를 앞선 그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기 위한 전시가 처음으로 열렸다. 작가 사후 330년 만이었다.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