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뉴욕 맨해튼의 샐러드 식당엔 긴 줄이 생겼다. 새해에 건강을 챙기겠다고 다짐한 이들이다. 북적거리던 패스트푸드점들은 상대적으로 한산하다. 샐러드 식당 앞의 긴 줄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건강한 생활습관에 대한 미국인의 고민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뉴욕에선 몇 해 전부터 새해 첫 달에 금주에 나서는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가 유행하고 있다. 2013년 영국의 비영리단체가 공중보건 프로젝트로 시작한 운동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미국으로까지 확산됐다. 동참을 선언한 사람만 400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꽤 성공한 캠페인이다. 심지어 술자리가 많은 연말에 ‘드라이 디셈버’에 도전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술을 한 달간 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영국 서식스대 리처드 피버 교수가 2018년 1월 드라이 재뉴어리를 실행한 816명을 대상으로 6개월 후 추적조사를 했더니 80%가 음주에 대한 통제력이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 횟수도 주당 4.3회에서 3.3회로 줄었다.
건강은 보너스다. 조사 대상자의 58%는 살이 빠졌고 54%는 피부가 좋아졌다. 71%는 잠을 더 잘 자고, 57%는 집중력이 좋아졌으며, 67%는 더 많은 에너지가 생겼다고 답했다. 88%는 돈을 절약했다니 경제적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 셈이다.
이렇게 좋은데, 문제는 실천이다. 한국은 독주 소비량이 많고 음주에 관대한 ‘술 권하는 사회’다. 사회적 문화, 경제적 환경, 학력 등 다양한 요소가 음주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인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군사독재와 경제개발 등 가시밭길과 힘든 노동의 길을 걸어온 걸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외국인의 눈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도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게 이상하게 보이는 것 같다. 중동의 알자지라TV는 젊은 남녀들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쓰러지는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음주 문화를 ‘한국의 숙취’라는 다큐멘터리로 내보내기도 했다. 미국 뉴욕에서 한국식 소주를 만드는 브랜던 힐 씨는 “한식은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음식인데 한국인이 위암에 많이 걸리는 건 엄청나게 마시는 술 때문이 아닐까”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에서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약 10조 원에 이른다. 국민 66.7%가 공공장소에서 타인의 음주로 인한 폭력에 두려움을 갖는다. 지난해 음주운전자 때문에 젊디젊은 윤창호 씨가 희생됐다.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까지 만들어졌지만 그 법을 만드는 데 관여한 국회의원이나 인기로 먹고사는 유명 연예인까지 술에 취해 운전대를 잡는 게 현실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문화가 확산되면 알코올 소비는 자연스럽게 줄겠지만 음주문화의 획기적 개선까지 기대하긴 어렵다. ‘닥치고 금주’는 성공하기 어려워도 드라이 재뉴어리처럼 조금씩 통제력을 키우면 어떨까. 비틀거리는 취객이 이상하게 보이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원에서 흥청망청 술판을 벌이는 이들이 사라질 때 ‘드라이 코리아’는 성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윤창호법은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한국식 성공법칙도 이젠 바꿀 때가 됐다. 미국에선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는 이도 대통령이 된다. 금주를 실천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술을 마시면 내가 얼마나 엉망이 될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세계 최악일 것”이라고 농담을 던진다. 술을 입에 대선 안 될 사람이 어디 트럼프 대통령뿐일까.
박용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