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박항서 감독은 우리에게 ‘넘버원’입니다.”
베트남과 일본의 2019 아랍에미리트 아시안컵 8강전이 펼쳐진 24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막툼 빈 라시드 스타디움. 베트남 대표팀이 걸어온 아시안컵 여정을 현지에서 모두 지켜봤다는 베트남 여성 축구팬 응우옌나나 씨(26)는 0-1로 경기가 끝난 뒤에도 밝은 표정이었다. 4강 진출에 실패했다는 패배감보다는 베트남 대표팀이 투지를 불태우며 싸워준 것에 오히려 감사해하는 반응이었다.
응우옌나나 씨는 “일본은 강한 팀이고 여기까지 베트남이 와준 것만 해도 자랑스럽다”며 “박 감독은 여전히 베트남의 영웅이다. 대표팀에 계속 남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함께 경기장을 찾은 딘죽 씨(28)도 “박 감독 부임 이후 베트남 축구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아시안컵에서도 잘 싸웠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행복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아시안컵 최다 우승국(4회)인 일본을 상대로 수차례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며 만만치 않은 팀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경기장을 빨갛게 물들인 베트남 축구팬은 경기 후 아쉬워하는 자국 선수들에게 비난 대신 환호를 보내며 위로를 건넸다.
박 감독은 5백 전술로 수비에 치중하면서도 날카로운 역습으로 일본 문전을 위협했다. 전체 점유율이 31.8%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도 베트남의 슈팅 수(12개)는 일본(11개)을 앞섰다. 특히 최전방 공격수로 나온 응우옌꽁푸엉의 분전이 눈에 띄었다. 빠른 스피드와 발재간으로 요시다 마야가 버티고 있는 일본 수비를 괴롭혔다.
하지만 20일 바레인과의 16강전을 승부차기 끝에 이긴 뒤 나흘 만에 치르는 경기라 체력 부담이 컸던 베트남은 후반전에서 급격히 무너졌다. 여러 차례 위기를 맞던 베트남은 후반 12분 페널티킥으로 도안 리쓰에게 결승골을 내줬다. 이날 아시안컵 역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비디오판독(VAR)으로 얻어낸 골이었다. 앞서 전반 25분에는 VAR로 일본의 헤딩골이 ‘노골’로 선언되는 등 8강전부터 도입된 VAR가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박 감독은 경기 뒤 “일본을 상대로 최선을 다했다. 졌지만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투쟁심을 보인 것에 감독으로서 만족한다”며 “이제 우승은 조국 대한민국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감독은 “베트남은 굉장히 열정적이고 공격적이었다”며 “베트남에는 아주 훌륭한 감독이 있다. 극적인 승부를 연출했다”고 평가했다.
김재형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