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에는 사람이 태어나기 전부터 많은 것이 결정돼 있었다. 귀족에게서 태어나면 귀족, 천민에게서 태어나면 천민이었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바꿀 수 없듯이 사회적 자격과 역할 또한 바꿀 수 없다고 믿었던 시대였다.
우리 이제는 그러지 말자고 시작한 것이 지금의 근대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다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 이 시대의 출발이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이 으레 그러하듯이, 사람이 모두 다 사람이라는 믿음은 때로 허상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내가 사람이 아니라 노예같이 느껴질 때 그런 허상의 순간이 찾아온다.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실제 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사람이어서 수시로 무너진다. 심할 때에는 혼자서 일어나기 쉽지 않다. 누군가 무조건적인 애정을, 기다림을, 믿음을 보여줄 사람이 절실하다. 어머니 같은 사람 말이다. 어머니 같다는 것, 혹은 어머니란 어떤 의미일까. 이 시를 읽으면 알게 된다. 세상 모두가 나를 욕해도 내 편일 사람, 곁에 있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사람. 시인의 어머니는 나이도 많고 건강치 않지만, 그저 그 눈빛만으로도 모든 일을 다 하고 계셨다. 존재만으로도 사랑한다, 괜찮다 말해주는 사람이 어머니 말고 또 계실까.
괜히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 때면 다른 명약이 필요 없다. 급하면 나도 모르게 부르게 되는 그 이름. 이 땅에 계시든 아니든 어머니를 주문처럼 불러보면 잔잔한 위로가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