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herewith proclaim….”(영어)
“吾等今玆宣言….”(중국어)
“Nous, les representants….”(프랑스어)
“Por la presente proclamamos….”(스페인어)
조선은 독립국이고, 조선인은 자주민이라고 세계만방에 밝힌 기미독립선언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돼 각국으로 퍼져나가며 독립의 당위성과 의지를 명백하게 전했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22일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기미독립선언서와 조선광문회’(주최 ‘3·1정신 조선광문회 복원위원회’)에서 독립선언서의 국외 전파 과정을 담은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19년 인쇄, 배포된 독립선언서 최종본이 중국어로 처음 번역돼 실린 건 톈진에서 창간돼 영향력이 컸던 신문 ‘익세보(益世報)’ 1919년 3월 11일자다. ‘짓밟아도 죽지 않는 기자의 혼(최殘不死之箕子魂)’이라는 제목의 기사 가운데 독립선언서 전문(全文)이 실렸다.
기사에는 번역본을 안중근 의사의 동생이 보냈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김 연구위원은 “실제 번역자는 다른 인물이고, 신문에 쉽게 게재할 목적으로 안중근 동생이라며 보낸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또 적어도 3월 20일경에는 인쇄본 선언서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전달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립선언서 영역본은 지금까지 5종류가 발견됐다. 전문을 처음으로 보도한 신문은 하와이의 ‘퍼시픽 커머셜 애드버타이저’ 3월 28일자 1면이다. ‘한국 독립선언서 공개되다(Korean Independence Declaration Bared)’라는 제목의 톱기사와 함께 ‘Manifesto(선언서)’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이후 미국 신문들은 거의 이 번역본을 전재하고 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여기 실린 선언서는 캘리포니아 지역신문 ‘새크라멘토 비(Sacramento Bee)’의 발행인이자 ‘원동특별통신원’이었던 매클래치(V S McClatchy)가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1919년 2월 25일 서울에 들어온 매클래치는 3월 4일 서울에서 출발해 일본을 거쳐 호놀룰루에 들렀다. 다시 미국 본토로 와서 독립선언서를 AP통신사에 전했다.
하와이 국민회의 기관지 ‘국민보’ 기사는 매클래치가 독립선언서를 구두 속에 숨겨서 가져왔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미국인 광산업자이자 AP통신 서울통신원이었던 앨버트 테일러가 직접 또는 동생을 통해 매클래치에게 독립선언서를 전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영역은 테일러의 집사인 ‘김 주사’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덕희 하와이한인이민연구소장은 “하와이 ‘애드버타이저’는 1919년 4월 30일 무오독립선언서 영역본 역시 게재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다음 달 15일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 주최로 3·1절 독립운동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된다.
이 밖에 3·1운동 당시 한국에 있던 외국인 선교사 등이 기미독립선언서를 영역해 해외로 전파했고, 영문학자이며 시인인 변영로(1897∼1961)도 번역했다고 증언했다. 김 연구위원은 “서울 경신학교 교장인 쿤스가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부에 보낸 ‘영문 독립선언서’는 번역자가 한국인이라고 나온다”며 “이것이 변영로 번역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독립선언서는 멀리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로도 번역됐다. 기미독립선언서가 발표되고 한 달여가 지난 1919년 4월 15일 멕시코 교민들은 경축식을 열고 독립선언서를 발행했다. ‘신한민보’ 5월 20일자에는 한인들이 번역한 독립선언서를 멕시코 각처의 교회에 보내고 독립 의지를 전파했다고 전했다. 교민 이순녀(Rocardo Lee)가 번역해 당대 3·1절 기념식에서 사용한 번역본이 멕시코 메리다 한인회에 남아 있다.
프랑스어 번역본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불특파위원인 서영해가 번역했고, 1929년 간행한 자전적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과 주변(Autour d’une vie coreenne)’에 게재했다. 러시아어 번역본은 3·1운동 당시 서울의 러시아 총영사가 번역해 3월 31일 본국에 보낸 문서에 첨부돼 있다. 모스크바 러시아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돼 있다.
김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발견된 독립선언서 번역본은 중국어와 영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 5개 언어지만 앞으로도 더 다양한 외국어본이 발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