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감시 카메라가 지켜보는 지상은 물론이고 3만 피트(약 9km) 상공으로 올라가더라도 감시의 눈길은 피할 수 없는 시대가 다가왔다.
23일 버즈피드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델타 등 3개 미국 항공사와 싱가포르 에어라인의 기내 TV 스크린에 카메라 렌즈가 달려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항공사들의 기내 스크린에도 정면에 앉은 승객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카메라 렌즈가 달린 것으로 보인다고 버즈피드는 전했다. 항공기에 앉아서 여행을 하는 시간에도 감시의 눈길이 미친다는 뜻이다.
카메라 렌즈가 달린 곳은 흔히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으로 불리는 기내 스크린. 최근 싱가포르 에어라인에 탑승했던 한 승객이 이를 발견했다. 그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카메라 렌즈 사진이 전 세계 누리꾼의 관심을 받으면서 다른 항공사들도 기내 스크린에 카메라 렌즈가 달려 있다고 ‘자백’한 것이다.
에어버스, 보잉 등 기종을 가릴 것 없이 일부 항공기 좌석에는 카메라 렌즈가 달려 있다. 항공기 1000여 대를 운항하는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항공기 82대에는 일등석과 비즈니스석 바로 뒤쪽인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에 카메라 렌즈가 달려 있다.
항공사들은 “우리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기내 스크린 제작사들이 카메라 렌즈를 포함시켰다”고 해명했다. 미국 항공사 3곳의 기내 스크린은 일본 파나소닉이 만들고, 싱가포르 에어라인 스크린은 파나소닉과 프랑스 업체 탈레스 등 2개사가 제작했다.
아메리칸 에어라인 측은 “제작사들이 ‘앞으로 기술의 발전이 이뤄져 항공기 승객들 간에 비디오 콘퍼런스를 할 수 있도록 카메라 렌즈를 포함시킨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커지자 항공사들은 “카메라 렌즈가 설치돼 있지만 작동시키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공항 보안검색을 지날 때 안면인식 시스템이 작동되면서 개인정보가 이미 유출되기 때문에 기내 카메라 렌즈는 큰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기내 스크린 앞에서 승객들은 하품을 하는 등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한 승객은 “카메라 렌즈가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면 매우 피곤한 여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미경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