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의 LA 다저스는 ‘국민 구단’이다. 최근 몇 년간 류현진의 승리를 기원하다 보니, 그의 동료들까지 훤히 꿰는 팬이 많아졌다. 요즘 다저스에서는 코디 벨린저라는 타자가 가장 뜨겁다. 벌써부터 ‘MVP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난리다.
호들갑은 아니다. 벨린저는 홈런, 타율, 타점, 출루율, 장타력 등 거의 모든 타격 지표에서 1위다. 쳤다 하면 홈런이고, 안타다. 그는 몸통을 극단적으로 회전시켜 스윙한다. 빨래를 쥐어짜듯, 그렇게 몸을 비튼다. 타구에 힘을 많이 싣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극단적인 스윙은 정확성까지 장착했다. 이율배반적이다. 그러니 1위도 그냥 1위가 아니다. 개막 이후 4월까지 기록한 홈런 14개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기록과 타이다. 같은 기간 타점(37개)은 신기록이다. 타율은 4할이 넘는다.
벨린저는 눈에 띄는 유망주는 아니었다. 마이너리그를 거쳐 2017년 메이저리그로 호출됐는데, 그해 홈런 39개를 치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홈런 25개로 한풀 꺾였다. 특히 큰 경기에서 약점을 노출하면서 하향세가 유력했다. 지난해 말 부임한 로버트 밴 스코욕 타격코치를 만난 게 행운이었다. 스코욕 코치는 스탠스(타격 때 두 발의 위치)와 그립(배트 잡는 자세)에서 미묘한 교정 지점을 잡아냈다.
벨린저의 변신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스코욕 이력이다. 그의 선수 경력은 대학 2학년까지가 전부다. 선수로도, 코치로도 마이너리그조차 경험해 보지 못했다. 사설 강습소에서 타자를 가르치는 걸로 생계를 꾸렸다. 차츰 실력 좋다는 입소문을 타더니 명문팀 다저스 타격코치에까지 올라섰다. 백전노장도 아니다. 올해 32세다. 저스틴 터너 등 선수보다 어리다. 파격의 연속이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 신화가 차고(車庫)에서 시작됐듯 스코욕의 혁신도 창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스승인 크레이그 월런브록은 20년 전 LA 인근 한 창고 건물에 강습소를 차리고 선수들의 타격 폼을 교정했다. 월런브록 역시 대학에서 야구선수로 1년 뛴 것이 전부다. 그는 1941년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였던 테드 윌리엄스의 오래된 타격 이론을 추종했다. 임팩트 때 배트와 공이 붙어 있는 시간을 최대한 길게 하고, 위로 올려 치는 스윙이었다. 이를 위해 비디오 분석 기법을 도입한 게 혁신이었다. 그의 문하생이었던 스코욕은 그 노하우를 더 발전시켰다. 퇴출 위기의 J D 마르티네스를 보스턴 레드삭스 간판타자로 성장시킨 게 대표 작품이다.
스코욕의 혁신 창출도 대단하지만, 다저스 앤드루 프리드먼 사장의 혁신 수용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주요 보직인 타격코치라면 화려한 선수 경력이 있어야 한다. 일종의 불문율이다. 스코욕의 선임 때 내부 저항이 작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다저스는 지난해 내셔널리그 팀 홈런 1위였다. 기존 코치진을 부정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프리드먼 사장은 한 단계 높은 완성도를 추구했고, 그 어려운 과정을 비제도권 과외 교사에게 맡겼다. 그의 혁신 수용은 메이저리그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고, 새로운 차원의 야구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 야구도 그렇고, 우리 사회도 어느 정도 고도화됐지만 좀처럼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미국의 혁신을 무수히 벤치마킹하고 있지만 성공사례가 없다. 혁신의 외형만 모방할 뿐, 혁신 문화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혁신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경직된 문화가 아쉽다. 우리는 혁신의 내용보다 혁신 주체의 간판을 먼저 따진다. 그래서 어렵게 창출된 혁신도 쉽게 묻히고, 혁신 창출은 더 요원해진다. 벨린저라는 괴물이 탄생한 과정을 보면, 우리 사회가 생각할 게 참 많은 것 같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