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을 내줬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번쩍’ 날아올라 공을 막아내는 동물적 반사 신경과 수비수들에게 “더 집중해”라고 외치는 카리스마.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끈 골키퍼 ‘빛광연’ 이광연(20·강원)은 이런 모습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선방쇼’의 이면에는 남모를 어려움과 두려움이 있었다. 18일 이광연은 동아일보·채널A 인터뷰에서 “홀로 골문을 지키다 보면 외로울 때가 많다. 스스로에게 ‘외롭지만 잘하고 있다. 끝까지 잘해 보자’고 되뇌며 대회를 치렀다. 그래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빛광연’이라는 별명까지 얻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라운드에서 듬직한 모습을 보인 이광연이지만 대회 전까지 완벽한 몸 상태는 아니었다고 한다. 강원 관계자는 “이광연이 2월 왼쪽 새끼발가락을 다쳐 한동안 팀 훈련을 못했다. 일종의 피로 골절이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치료에 집중했기 때문에 K리그1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광연은 “대표팀에 소집된 뒤에도 약간 통증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다치더라도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각오였다. 대표팀 의료진이 관리를 잘해 주신 덕분에 대회를 치르면서 100%에 가까운 몸 상태가 돼 건강히 골문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중압감 속에 골대에 주문을 거는 의식까지 진행한 이광연이었다. “전반전과 후반전을 시작하기 전에 골대를 잡고 ‘오늘도 잘 부탁한다. 슈팅을 막아줘’라고 기도했다. 내가 놓친 공을 골대가 막아줘 (나를) 살려준 적이 많았다.” 그런 그가 딱 한 번 골대에 주문을 걸지 못한 때가 있다. 이광연은 “우크라이나와의 결승(1-3 한국 패) 후반전에 ‘골대 기도’를 못했다. 그때는 골대가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우승에 실패했지만 이광연은 이번 대회 활약을 통해 ‘차세대 국가대표 수문장’으로 발돋움했다. 마음고생이 많았던 이광연이지만 적과 동료들이 자신을 보는 그라운드 위에서는 당당하게 골키퍼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광연은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로 세네갈과의 8강 승부차기를 꼽았다. 당시 그는 세네갈 네 번째 키커의 슛을 몸을 날려 막아내 한국의 승리(승부차기 3-2)를 이끌었다. 이광연은 “승부차기에 돌입하기 전에 공 앞에 최대한 오래 서 있었다. 심판이 골문으로 가라고 하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다가 또 한 번 멈춰서 상대 키커를 노려본 뒤 골문으로 향했다. 이런 방식으로 신경전을 펼쳐 상대 키커의 흐름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교란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첫 키커 김정민(FC리퍼링)이 실축하자 김정민을 끌어안고 “잘 찼다. 괜찮아. 내가 막아줄게”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세네갈 선수들을 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이광연은 “우리가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내가 웃는 모습을 보이니 세네갈 선수들이 긴장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세네갈은 키커 5명 중 3명이 실축했다.
이광연은 키가 184cm로 골키퍼치고는 큰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새벽마다 계단을 오르며 체력을 키우고, 세트피스 시 위치 선정 능력과 순발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개인 훈련을 해왔다. 이광연은 “순발력은 장난꾸러기였던 어린 시절에 강아지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니면서 향상된 측면이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해외 선수들과 경기를 하면 키가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을 통해 내가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광연은 K리그1 강원으로 돌아가 주전 경쟁을 펼치게 된다. 이광연은 “계속해서 팬들에게 ‘빛광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10경기 중 8경기는 선방으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는 골키퍼가 되겠다”고 말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